은혼에 인상 깊었던 점과 아쉬웠던 점

2017. 7. 6. 23:02감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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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혼 1(1~201)를 다 보고나서 몇 가지 생각난 것을 적어보려 한다. 인상 깊었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각각 두 가지씩 꼽을 것이다.

 

은혼에 인상 깊었던 점

 

 첫째, 은혼의 장르는 은혼이다

나는 은혼을 보기 전에 사람들이 이 애니에 대해서 왜들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다. 액션이면 액션, SFSF지 만화 그 자체가 장르라니?

하지만 200편 정도 보니까 왜들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은혼은 옴니버스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물론 장편들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기는 한데, 어디까지나 기본 플랫폼은 각 화마다 독립되어 있다.

 

 때문에 작중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대단히 자유롭다. 시모네타를 비롯한 말장난으로 시작해서 말장난으로 끝나는 화도 있고,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사무라이라는 점을 이용해 배틀물로 나가는 화도 있다.(이 경우는 대부분 장편이지만)

또한 서브컬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 보이게끔 하는 것도 이러한 자유로운 분위기 구성에 한몫 하고 있다. 서브컬쳐의 범위는 실로 다양하기에 어떤 특정 분위기나 소재에 국한되는 다른 매체와는 달리 은혼은 범용성이라는 측면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은혼을 은혼답게 만드는 것은 메인 스토리가 아니라 작중 인물들의 개드립이 아닐까 싶다. 전투 씬 하나 없이 그저 등장인물들의 입심만으로 진행하는 화가 결코 적지 않다. 보통은 이렇게 대화만 계속 진행하면 진부해지기 마련인데, 은혼은 작중의 세계관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소재를 확장시키고, 또 거침없는 드립으로 진부화를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사실 개인적으로 재미없는 화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냥 부담 없이 다음 화로 밀어버리면 되니까 부담 없이 볼 수 있었다. 요컨대 아무런 생각 없이 또래 만담 듣는 느낌을 주는 것이 은혼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마다오

솔직히 말해서 난 애니메이션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을 끝까지 완주한 적이 손가락에 꼽는다. 왜냐하면 매너리즘 때문이다. 초반에는 어려움을 겪는 주인공의 입장에 동조하기도 하지만, 화를 거듭할수록 날로 먹는 모습에 실망하게 된다. 어떻게는 주인공은 띄워줘야겠고, 이야기 진행하기는 귀찮고 하니 주변을 병풍으로 만들고 몇몇 주요 인물만 우상화시켜서 이야기를 속행한다.

 대표적으로 원피스나 블리치 같은 소년 만화를 볼 때 그런데, 초반에는 참신하고 뭔가 재밌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놈이 그놈 같고 오히려 주인공이 싫어지게 된다. 똥을 싸든 오줌을 싸든 뭘 해도 주인공은 용서받고, 뭘 해도 성공한다. 이런 인간을 현실에서 마주한다면 보통 짜증부터 나지 않나?

뭐든지 등장인물에 정이 떨어지면 그 때부터 안 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은혼의 마다오(완폐아)는 특별한 존재다. 내가 애니메이션 캐릭터 중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게 마다오다. 내가 왜 마다오를 좋아하냐면 이 캐릭터 속에서 넘쳐나는 잉여성때문이다.

하세가와가 단순히 노숙자에 백수이기 때문이 아니다. 진지하게 말하자면 플롯을 구성할 때, 마다오는 완전히 필요가 없는 존재다. 그에게 전투 능력은 아무것도 없고, 그렇다고 주변 인맥이 좋아서 주인공 일행을 돕는 것도 아니다. 말주변이 좋아서 시청자를 뿜게 만드는 드립력을 지닌 것도 아니다.

메인 스토리를 진행시킬 영향력이 없고(후반부에 역할을 담당한다는데 아직 안 봐서 모르겠다), 진선조나 요로즈야 긴짱처럼 서브플롯을 장악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마다오다.

 

 다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소설이라면 100% 단순 1회용으로 써먹고 버려졌을 그가 중요(?) 조연으로 활약하는 것이 정말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도 억지로 밀어주는 게 아니라 정말로 작중 분위기를 구현하는 데에 일조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좋았다.

 

 

아쉬웠던 점

 

 첫째, 긴토키 원패턴

 은혼의 모든 배틀씬은 공통점이 있는데 누가 관련되고 누가 싸우는지와 관련 없이, 모두 긴토키가 끝낸다는 것이다.

---긴 으로 이어지는 플롯은 각 등장인물에게 골고루 배정된 비중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기껏 등장인물들의 상황 말해주고 비중 넣어줬더니, 정작 주인공이 나서서 다 해결해버리니까 극의 긴장이 다 풀려버리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등장인물들이 그냥 처음부터 드래곤볼 마냥 긴토키에게 기를 몰아줘서 한 번에 끝내버리는 게 낫지 않나는 생각이 들 정도.

 

 물론 긴토키가 주인공이고 요로즈야(해결사)이며, 애니 제목도 불알이 아닌 긴의 영혼이라는 뜻이니까 긴이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대안은 얼마든지 많았다. 각 장편마다 주요 조연들이 등장하는데, 거의 대부분 그들을 중심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긴토키만한 강자가 없는 것도 아니다. 역량은 약간 아래지만 진선조 3인방도 있고 요로즈야 일행, 동급으로 볼 수 있는 카츠라나 핫토리도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그저 조연으로 그친다. 심지어 자기들이 주인공인 화마저도.

 

 하지만 이렇게 특정 몇몇 인물들이 극의 흐름을 좌우하는 것은 작품에 결코 이롭지 않다. 정형화된 패턴이 등장하면, 결국 시청자들은 끝까지 보지 않아도 대충 전개 방향이나 결과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흥미가 떨어지기 쉽고, 계속 볼 유인도 없어진다.

 나 같은 경우도 배틀씬이 많은 장편은 잘 안 보게 된다. 초반에는 재밌었지만 갈수록 비슷한 전개가 폭증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악역들의 사연팔이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지만, 어찌된 게 이 애니의 악역들은 한바탕 싸우고 나면 반드시 사연팔이를 하면서 동정을 얻으려 한다. 사실은 이 녀석도 좋은 녀석이었다는 건가. 악역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그 장면만 나오면 바로 스킵해 버린다.


 물론 극 중 전개상 악역들의 사연이 나올 수 있다. 아니 나오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애초에 그 사연이 극을 구성하는 배경일 테니까. 하지만 은혼 악역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빌런의 과거를 중점적으로 비추면서, 현재를 희석시키는 데에 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냐고 묻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비유 몇 가지를 들고 싶다. 국내에서도 한 때 폭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얼음과 불의 노래의 메인 빌런 중 하나인 써시 라니스터는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파멸의 예언을 받은 그녀는 항상 누군가가 자신을 죽일 것을 염려해야 했고, 기껏 결혼한 로버트는 술주정뱅이에 바람둥이였다.

 하지만 그런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녀의 악행에 동정의 눈길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기 때문이다.

볼드모트가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를 옹호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애니는 악역을 끝에는 항상 미화한다. 야왕 호우센은 태양을 사랑했다는 뭐 같잖은 설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라이아는 정확히 달을 사랑했다는 것밖에 그와 차이점이 없다. 이 둘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억압(지라이아는 그러기 전에 뒤졌지만)했음에도, 되도 안 되는 미학 얘기하다가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의 부축을 받으면서 평화롭게 뒤진다.

 

어떠한 악행을 저지르고 이를 저지하는 과정이 나오며, 지금까지의 악행이 과거의 삐뚤어진욕망으로 기인한 것이 밝혀지자 주변 인물들은 동정 내지 용서한다.

 

 메인 보스만이 아니라 단편으로 나오는 자잘한 네임드 빌런 모두가 이런 식이다. 터무니없는 전개가 아닐 수 없다. 다른 작품이 이따위로 전개시켰으면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것이다. 당장 조커가 배트맨이나 다른 히어로에게 얻어 터졌을 때, 과거 사연팔면서 악행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해보라. 생각만 해도 역겹지 않는가?


 작가는 등장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과 사연 팔이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불행한 과거는 현재의 악행에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 불필요하게 애정을 쏟으면 안 된다.

 작가 자신이 등장인물의 과거에 빠져버리면 결국 사건을 보는 시각을 흐리게 되고 그 결과가 자신들을 죽이고, 고통스럽게 했던 인물에 대한 애도 내지 묵념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은혼은 여러모로 한계가 많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추천할 만한 애니메이션이다. 앞서 언급한 사연 팔이는 뭐,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면 빠질 수 없는 헛짓거리니까(이 짓거리를 넘어선 건 내가 알기로 강철의 연금술사가 유일하지 않나 싶다) 그냥 넘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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