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4)
-
봉황수(鳳凰愁) - 조지훈
봉황수(鳳凰愁) - 조지훈(1940) 벌레 먹은 두리 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風磬) 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 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2017.02.24 -
선운사에서 - 최영미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2017.02.20 -
봄은 고양이로다 -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 이장희(1924)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2017.01.28 -
서시 - 윤동주
서시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년 11월 20일, 윤동주
2016.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