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밤(2017) - 설명충이 낳은 아쉬움

2017. 12. 11. 22:41감상/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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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밤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감독: 장항준

배우: 강하늘, 김무열, 나영희, 문성근


내 평점: 3.0/5.0



오랜만에 본 미스터리 영화였다.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 두 형제가 마치 칼들고 서로 찌를 것처럼 격한 대립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했다.

아쉽게도 칼은 들지 않았지만, 그보다 스케일이 더 큰 대립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억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기억을 중심으로 모든 사건이 엮인다. 형의 이중성, 석연치 않은 사건들, 비밀의 방.

세계는 주인공의 기억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가 기억하는 형은 분명 왼쪽 다리를 절었던 모범생이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그의 가정은 화목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그가 기억하는 세계는 새로 이사하자마자 깨진다.

이사하는 집도 왠지 모르게 낯익은 느낌이 들고, 가족은 자신이 비밀의 방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며, 형은 밤에 어딘가를 나간다.


그가 기억하던 정상과 현실이 괴리를 빚으면서 이 영화의 서사가 전개되는 것이다. 





-연기에 대하여


나는 아직 배우들 개개인의 연기에 대해서 제대로 관찰할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알못인 나도 주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고 할 수밖에 말할 수 없다. 

특히 의혹을 느끼고 나서 두려움에 떨었던 주인공(강하늘 분)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엄마(나영희 분)가 자신의 정체를 들키자 목소리 톤을 바꾼 것은 약간 아쉬웠다. 드라마에서 많이 듣던 '감정이 섞인' 음조로 들렸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빠(문성근 분)의 평이한 어조가 더 소름돋았다.





-스토리에 대하여


스토리는 매력적이었다. 뜬금없이 차에서 시작되어 이사 도중에 복선을 깔아놓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사짐 직원이 '형이세요?'라고 물었던 그 장면이 영화보는 내내 계속 기억에 남았다. 대체 무슨 의미인가? 이 영화에서 무슨 역할을 할 것인가? 하고 말이다.

이 복선을 경찰서에서 멋지게 회수한 것은 실로 칭찬할만 하다.


하지만 너무 친절했다.

정확히 경찰서 이후, 영화는 '설명충'이 되어 버렸다.


'나오라고' 소리치는 주인공의 외침에 너무 겁먹은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작품의 배경과 동기들을 술술 털어놓는다.

꿈과 현실, 형에 대한 비밀, 어두운 색채로 한껏 들뜨게 한 신비감이 이 대목부터 두루마리 휴지 풀리듯 너무 쉽게 풀렸다.





나도 안다. 장면을 전개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이 정말 최선이었을까?

은유적 표현으로 배경과 동기를 설명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약'에 대한 포커스를 다른 가족의 수상한 행동 몇 컷과 함께 연관시켰다면, 신비감과 설명을 동시에 불어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영화 첫 장면을 차가 아니라 공원에서 다른 가족을 만나는 장면으로 잡고, 

꿈에서 깬 듯한 흐름으로 갔으면 미적, 서사적 완성도가 올라갔을 것이라 본다.


경찰서에서 주인공이 나오던 중 유족들의 포스터를 힐끗 보는 장면을 넣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차라리 이쪽이 더 와닿지 않았을까.




-아쉬운 점


너무 아쉽다. 이 영화는 더 잘할 수 있었다. 꿈을 빌려서 서사 배경을 퍼즐처럼 나열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러면 관객들이 서사를 추리하는 재미가 있지 않았을까?


관객을 믿지 않은 것인지, 예산이 적었는지, 힘이 다렸는지 모르겠지만, 설명충이 이 영화의 가능성을 망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매력적이다.

초중반기의 '독백'은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 점을 좀더 살렸으면 괜찮았을 것이다.

또한 주인공이 중반까지 겪은 사건들의 생동감과 현장성이 굉장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을 이입했을 정도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괜찮은 영화다. 한번쯤 볼만한 것 같다. 하지만 메인 주제인 '기억'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점, 후반부를 설명으로 날린 점이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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