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괴물들(2020) - 한국식 신파가 없어 좋았다

2020. 6. 28. 22:03감상/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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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범죄, 스릴러

감독: 김용훈

배우: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내 평점: ★★★☆☆

 

 

난 이 영화가 있는 줄 유튜버 거의없다의 영상을 보고 알았다. 넷플릭스에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유튜브에서 결제해서 봤다.

 

영화 속

미란, 중만, 태영의 이야기가 하나의 시간대로 맞춰지면서 연결되는 구조로 되어 있기는 한데, 이런 서술트릭은 다른 곳에서도 이미 본 터라. 신선하지는 않았다.

(나는 창세기전에서 처음 봤다)

 

 

능력도 없어 다 쓰러져가는 집에 사는 중만,

사기 당해서 돈 꼬라박아 맨날 남편에게 쳐맞고 사는 미란,

애인이 사업 말아먹고 도망가서 매일 빚쟁이에게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태영

 

 

이들은 돈이 매우 필요하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고, 사람을 죽이고, 배신한다.

중만은 돈을 훔치고, 미란은 돈을 만들고, 태영은 돈을 운반한다.

 

영화는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이 괴물이 되어가는, 아니 이미 괴물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름 좋았던 것은 한국식 신파가 적었다는 점이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주의 깊게 본 인물은 주인공 트리오가 아니라 중만의 어머니다.

중만의 어머니는 치매 걸린 할매인데, 한국 영화에서 보통 이런 캐릭터는 신파 요소를 위해 아들을 위해 엄청난 희생을 한 모성애를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신과 함께처럼) 그리고 이 인물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면 주인공을 비롯한 일행이 질질짜면서 으헝허헝허억하며 슬픈 노래가 나오는 게 주요 패턴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할매에 대해서 매우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똥오줌도 못 가리고 툭하면 며느리에게 시비 걸며 피해주는 정말로 현실에 있을 법한 좀 뒤졌으면 좋겠는 노인으로 묘사한다. 츤데레가 아니다. 현실 속에서 옆에 있으면 진짜로 빨리 뒤졌으면 하는 노인네다. 그런 노인네가 예상치 못한 때에 기가 막힌 활약(?)을 한다. 본인은 그런 결과를 낳으리라 절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그 점이 결국 그 파국을 낳았다.

 

또한 이 할매가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오열하는 중만에게 내뱉는 대사가 진짜 멋있다.

 

 

영화는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의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지만,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약간 어리숙하다.

박사장은 다른 사람을 연기하면서 가장 중요한 자신의 증거를 가리지 않았고, 중만은 거짓말에 서투르면서 사람을 너무 잘 믿고, 미란은 사람을 배신하면서 정작 다른 사람을 믿는다. 태영은 어떻게 돈을 만들려 하지만, 그 방법이란 게 결국 로또나 다름 없는 도박이었다.

 

그럼에도 영화는 몰입감을 놓지 않는다.

왤까? 나는 영화 속 사건이 누구나 처음 겪는 일이라 생각한다.

조폭이든, 화류계 여사장이든, 꽃뱀이든, 사우나 알바든, 출입국 공무원이든 자기 인생에서 10억이 든 돈가방이 갑자기 튀어나온다고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당황하고 실수한다. 머리 속으로는 분명 생각해놓았지만,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실책을 내놓는다. 이론과 현실이 맞지 않는 점이 묘하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럼에도 등장인물들은 발버둥친다.

잠시 여유를 가지고 뒷짐 지면서 생각해보면 분명 이 사태의 해결 방법은 있다.

가방으로 연희의 빚을 갚고, 태영은 여사장 연희의 기둥서방 노릇하면서 꿀 빨고, 두만은 돈다발 몇 개로 학자금과 기타 비용을 대면 된다.

 

이상적인 시나리오이지만, 분명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협상하고 의논하면 된다. 박사장이 메기와 함께 무력을 가졌다고는 하나, 굳이 살인하면서 돈을 뜯어내 경찰의 주목을 받는 것보다 좋게 가져가는 편이 그에게 훨씬 이익이다.

 

그럼에도 영화 속에서 그런 일은 일어날 기미도 없다.

헐리우드 영화라면 주인공과 총 몇 발 주고 받으면서, 한국 영화라면 머리에 왁스바른 뺀질이가 분명 언급할 이 타개책을 이 영화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모두 당황스럽고 당황스러우니 하나만 보인다.

저걸 어떻게든 내가 가져야한다.

영화는 이를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여유를 가진 사람이 없다. 딱 한 명, 할매 빼고.

하나 같이 초조하고 안달이 나있다. 돈이 없으면 뒤질 것 같고, 돈만 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돈이 있네?

 

이걸 어떻게 선비처럼 에헴거리며 너랑 나랑 해서 나누자 하겠는가?

 

 

이 영화는 분명 한국 영화답지 않은 구석이 많은 영화다. 과장된 감정이 없다.

그래서인지 꽤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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