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제왕 - 드라마를 만드는 드라마, 너무 아쉽다

2016. 8. 23. 09:43감상/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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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는 어떤 내용으로 시작하든 결국 연예로 빠지며, 연예로 끝나는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다. 오죽하면 의학 드라마를 찍으면 의사끼리 연애하고, 범죄 드라마를 찍으면 형사끼리 연애한다는 말이 있을까. 물론, 연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일부이며 잘 쓰면 매력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강해지고, 인간 관계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내용이다. TV키면 나오는 드라마는 모두 하나 같이 자신의 컨셉이나 주제와는 무관하게 사랑 타령만 해댄다. 내용은 던져버리고 어떻게서든지 등장 인물끼리 엮어서, 시청률이나 얻어먹으려는 드라마가 장르를 불문하고 상당히 많다. 아니, 한국 드라마에서 장르와 주제에 충실한 드라마는 거의 없다. 그런데 그렇게 내용도 던지고 끼워 넣은 연애도 대부분 열 번씩은 써먹은 클리셰를 재탕하는 것에 불과하니, 도무지 답이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드라마의 제왕은 그 존재 자체로도 이단이었다. 그 누가 한국에서 '드라마를 만드는 드라마'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을까. 장르는 제쳐두고 연예인 인기에 편승해서 대충 때우는 이 드라마계에서 말이다.

 이 드라마의 캐릭터와 스토리 그리고 전개는 기존에 봤던 한국 드라마와 상당히 달랐다. 작 중내 등장 인물들은 현실적이고, 스토리도 명확하다. '앤서니 김은 경성의 아침을 성공시켜 재기할 수 있을까' 이게 전부다.

 이 드라마는 자칫하면 정말 지루해질 수도 있는 소재를 채택했다. 드라마 제작. 그러나 이 작품은 그 소재를 개성있는 인물들과 치밀한 배경으로 커버한다.

 

 앤서니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뭐든지 다하는 비열한 인물이고,

 신인 작가 이고은은 자신의 작품의 순수성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으며,

 방송국 국장 남운형은 모든 상황에 자신의 원칙에 맞게 행동하려는 원칙주의자이며,

 슈퍼 스타 강현민은 인기와 돈에 급급한 속물이다.

 

 이 모든 인물들이 함께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위기가 온 셈이다. 작품은 이러한 위기를 굉장히 잘 살리고 있다. 앤서니의 독단적인 결정과 상대 대표사의 집중 견제, 앤서니가 지난 날 벌인 일들에 대한 업보 등 극은 갈 수록 태산임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앤서니의 투쟁은 완급 조절이 잘 되어 있고, 분쟁 내용과 해결책이 개연성있다. 물론 야쿠자와 경쟁사 회장 같은 '높은 분'과의 갈등에선 약간 비약된 감이 있었긴 하지만.

 

 그러나 이 드라마도 한계가 있었다. 본래의 주제 '앤서니 김은 경성의 아침을 성공시켜 재기할 수 있을까'를 반만 완성시킨 것이다. 경성의 아침 제작편은 상당한 긴장과 반전의 연속을 가져온 반면, 편성 확정 이후 그러니까 10화 이후부터는 작품의 전개가 급속도로 루즈해진다.

 극의 묘미는 앤서니의 철두철미한 계산과 실행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있는데 그 위기가 없어지고 나니 더 이상 극을 진행하기 힘든 것이다.

 

 이럴 경우 보통 극을 어떻게서든지 억지로 쥐어짜거나, 깔끔하게 끝내는 두 가지 전개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전자를 택했다. 중반까지만해도 등장인물의 대사를 빌려 비판한 '통속'이 경성의 아침에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극에도 고스란히 재현되어, 마지막화까지 이어나갔다. 결국 다른 드라마와 차별화된 특징을 스스로 포기하여, 똑같아진 것이다.

 

 나는 이 드라마가 굉장히 아쉽다. 극중극, '경성의 아침'은 다름 아닌 드라마의 제왕을 상징한 것이었다. 참신한 스토리, 훌륭한 연기력, 뛰어난 연출력으로 시청률 1위를 찍으려했던 경성의 아침은 성공했지만, 드라마의 제왕은 실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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