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캐치 미 이프 유 캔(2002) - 불후의 명작

2016. 9. 30. 00:33감상/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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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드라마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주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톰 행크스

 

 

스필버그 감독이 찍은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실존 인물 프랭크 애벡네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영화 초반부는 프랭크의 이력을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칼 핸래티(톰 행크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핸래티는 프랭크를 붙잡은 FBI 요원, 조셉 셰이(joseph Shea)를 본따 만든 캐릭터로 왜 다른 이름으로 대체되었는지는 정확한 이유가 발표되지 않았다.

프랭크는 이미 프랑스 경찰에 의해 체포된 상황이었다. 핸래티는 그를 이미 아는 듯이 딱딱하게 대하지만, 안색이 급격히 안 좋아진 그의 상태를 걱정해 병실로 옮긴다. 그러나 이는 프랭크의 사기였고, 결국 그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히게 된다.

 

 

불가능할 것만 같은 상황도 헤쳐나가는 그의 재치는 이 영화의 백미

 

 

 

이후, 장면이 전환되면서 프랭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프랭크는 꽤 잘사는 집안의 외동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실 사기를 쳐서 은행의 대출을 받아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사기 현장마다 아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이로 인해 프랭크가 사기 수법을 체득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프랭크의 집안은 결국 이전보다 좋지 않은 곳으로 이사하게 된다. 그곳에서 불어강사를 연기하여 양아치에게 복수하고, 조퇴 신청서 위조를 도와주는 등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한편, 집안은 더욱 더 상황이 안 좋아져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어머니와 아버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프랭크는 과감하게 가출을 선택한다.

 

 

두 마리의 생쥐가 크림통에 빠졌습니다. 한 마리는 빨리 포기하고 익사했지만, 다른 한 마리는 살기 위해 끝까지 발버둥쳤습니다. 그러자 크림은 버터가 되었고 쥐는 기어나올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순간 저는 그 다른 한 마리의 생쥐입니다.

-프랭크의 아버지가 시상식에서 한 연설로 이후 프랭크의 삶을 결정짓는 명대사이기도 하다.

 

 영화 중반부는 성공한 사기꾼이 된 프랭크의 모습을 비추는 데에 할애된다. 프랭크가 어떠한 방식으로 사기에 성공하고, 핸래티는 오합지졸들을 이끌며 그를 추격하는 일종의 코미디 같은 연출이 계속된다. 프랭크는 얼핏보면 항상 이기는 길을 택하고 있는 듯 보인다. "양키스는 항상 이긴다. 왜냐하면 그 유니폼에서 기죽기 때문"이라는 아버지의 조언에 충실히 따라, 자기 자신의 신분을 질문을 받지 않는 고위층으로 세탁한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 확인이나 관련 절차들도 신분 앞에서는 허물어진다. 사람들은 양키스의 유니폼을 보는 것이다. 때문에 스스럼없이 경계를 푼다. 당연한 질문을 하지 않고, 당연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그 모든 규칙과 의심으로부터 예외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순간의 위기를 넘어가는 순발력과 탁월한 화술 그리고 깨끗한 외모 관리 등 자신을 충분히 단련시켰기에 모두를 속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막대한 피해를 야기하는 프랭크의 사기가 악독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은 영화 내내 보여주는 세상의 속물주의 때문일 것이다. 특히 영화는 사기를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프랭크가 사랑한 브렌다(에이미 아담스)외에는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관객들이 프랭크의 사기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장려하고 응원할 수 있도록 일부러 편집한 것이 아닌가 싶다. 더군다나 프랭크의 사기에 걸려든 사람들 대부분이 일상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범죄 의식을 느끼기 힘들게 한다.

 

다른 사람들이 양키스라는 유니폼에 주목하지만, 미키 맨틀이라는 양키스 팀 내의 유명한 선수에 주목하는 칼 핸래티는 결국 프랭크라는 '사람'에 집중한다. 그에 대한 집요한 추적 끝에 핸래티는 프랭크가 겪은 환경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를 세상으로 끄집어 내는 데에 성공한다.

 

 

 

 

 

 

 나는 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가 가족, 유니폼과 사람 그리고 거짓과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가족, 프랭크는 부모의 이혼 이후로 가정에 대한 애정을 갈망해왔다. 그는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쓰면서 가능한 만나려고 한다. 자신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싶을 때, 상담을 요청한 것도 아버지였다.

 

 영화 속 주인공, 프랭크에게 있어 아버지는 현재의 자신을 만든 원류이자, 자신이 살아갈 길과 재능을 열어준 사람이다. 하지만 가정을 유지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는 프랭크가 더 이상 사기를 치고 싶지 않다고 말할 때, '넌 그렇게 할 수 없다'라고 답하며 아들의 속죄를 거부한다. 요컨대 그는 프랭크의 능력이라는 골격을 만들었지만, 인격적 성장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이다. 즉 '실패한 아버지'라 할 수 있다.

 실패한 아버지와 가족에게서 자란 프랭크는 가족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진다. 브렌다를 만나면서 그는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생활을 거부하고, 핸래티에게 연락하여 휴전을 제안한다. 장인에게 자신은 그저 그녀를 좋아할 뿐인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라고 고백한 것은 사기가 아니라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를 쫓는 핸래티 또한 실패한 아버지였다. 결혼반지를 꼈지만, 후반부에 드러나듯 아내와 재혼하여 가족과는 이별한 상태. 크리스마스 이브에 계속 프랭크와 핸래티가 접촉하는 것도 가정을 이루는 데에 실패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그러나 핸래티가 프랭크의 아버지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프랭크의 능력과 명성이 아닌 그의 인격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영화 내내 핸래티는 프랭크를 세계를 뒤흔든 사기꾼이 아닌 단순한 미성년자로 취급한다. 즉, 그는 미키를 주목한다는 점에서 프랭크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고, 결국 방황하던 프랭크의 발길을 돌리는 성공한 아버지가 된다.

 

 가족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프랭크-핸래티의 가상 가족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두 사람은 범행 이전에 전혀 얼굴도 못보던 사이였지만, 역설적으로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이해하는 사이가 된다. 왜냐하면 고독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홀로 지내는 두 사람은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을 필요가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가족(혹은 친구)을 얻는 가슴 따뜻한 휴먼 스토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유니폼과 사람은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잡았던 키워드였다. 영화 전반에 걸쳐서 프랭크의 사기는 '유니폼'만 보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부조종사, 의사, 변호사 그가 꾸며낸 가면은 모두 의심의 여지 없는 고위층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세상에 살면서 당연히 받아야 할 질문과 거쳐야할 과정들을 전혀 받지 않는다. 그것은 성공한 자들의 특권이고, 그렇게 대우받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개개인의 인격과 생각, 품격보다는 가진 재산과 지위를 더 중시하는 세상

 여기서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의 카타르시스가 탄생하는 것이다. 사회에 통용되는 룰을 지키지 않고, 자기들만의 세상에 갇혀 함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 이러한 세상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는 프랭크는 악독한 범죄자이기는커녕 오히려 한때 로빈 후드 같은 영웅 혹은 귀여운 악동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유니폼의 덫에 빠진 것은 프랭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가진 유니폼을 객관화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서 프랭크는 함정에 빠진다. 자신들이 속인 다른 사람들처럼 유니폼은 자기 자신도 속인 것이다. 그의 삶은 자신이 만든 유니폼에 맞게 디자인된다.

 그는 제복을 떠나서 살아갈 수가 없다. 항상 다른 이름과 배경 그리고 사람을 만들어낸다. 자신이 만들어낸 제복을 입기 위해, TV를 보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거짓 공고를 낸다. 제복이라는 것은 그것을 입는 개인에게 맞춰서 지급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삶의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날, 꾀죄죄한 모습을 한 채 혼자 수표를 찍어내던 프랭크의 모습은 제복 없는 그의 삶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동안 깔끔하고 항상 자신만만하던 이미지를 단번에 깨버리는 씬. 그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유니폼과 사람은 속물주의적, 비인간적 세계에서 벗어나 인간과 인간으로써 소통할 수 있는 인본주의에 대한 희망을 나타내고 있는 키워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고, 개인 간의 유대를 되찾을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짓과 진실은 내가 이 영화를 두 번째로 봤을 때 잡은 키워드이다. 이 키워드를 잡게 된 계기는 영화 마지막 부분, 핸래티의 가정사 고백에서 때로는 거짓된 삶이 더 쉽다는 대사였다.

 

 사실 영화 내내 프랭크와 핸래티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프랭크는 거짓된 신분으로 불법인 사기를 치며, 항상 프랭크 애벡네일이라는 본래의 정체를 죽여야 한다. 그는 세상 모든 것에서 도망치는 어린 아이이며, 동시에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천재다.

 반면 핸래티는 진실된 신분으로 합법인 수사를 하며, 항상 칼 핸래티라는 자신의 신분을 밝혀야 한다. 그는 세계적인 사기꾼을 쫓는 어른이며, 동시에 철저하게 검증된 정보와 증거를 통해 수사 계획을 수립하는 보통 사람이다.

 

 핸래티는 자신의 생각을 항상 정직하게 말한다. 즉, 상대방에게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공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거짓된 삶을 살아온 프랭크는 그 메시지를 쉽사리 읽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을 속이려는 음모라고 단정짓고, 그를 피한다. 왜냐하면 그 편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제복이라는 화려한 삶에 익숙해진 그는 프랭크 애벡네일로써 살 엄두를 내지 못한다.

 마침내 자기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용기를 냈을 때 조차도 그는 공항 속의 브렌다를 피하고 기장을 연기하면서 도망친다. 그의 삶은 결코 진실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프랭크를 여러 노력을 통해 FBI라는 합법적인 직장에서 전직 사기꾼이자 위조 수표 전문가 프랭크 애벡네일로서 정착할 수 있게 만든 핸래티는 진실과 도덕 그리고 신뢰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즉, 거짓과 진실이라는 키워드에서 영화를 보면, 영화 중반부에서 핸래티가 예고했듯이 프랭크가 잡히는 것은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당연한 사실인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때로는 가혹하다. 프랭크는 진실된 삶을 살기 위해 그동안 편하게 입고 다녔던 만능키 유니폼과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의 결혼 그리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죽음을 라이벌에게서 들어야 했다.

 핸래티 또한 다년간의 추적을 끝으로 프랭크를 검거하였고, 4년 동안 국장과 경찰청장을 설득했지만 막상 그가 얻은 것은 그 아무것도 없다. 선의는 그 자체로 어떠한 보상을 받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진실된 삶을 살면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직위나 보상금이 아니다. 바로 내면의 평화인 것이다. 영화 내내 고독했던 그들은 영화 마지막에 비로소 경직되었던 얼굴을 풀고 평화를 되찾는다. 정직과 신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가는 영화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유머러스하지만 그와 동시에 얕볼 수 없는 진중함을 가지고 있다. 나는 명작이라는 것은 한 번 봤을 때 스토리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여러 번 볼 때마다 기존과는 다른 관점들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명작이라 할 수 있다. 인생 전반에 걸쳐 두고두고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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