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소 고지(2016)-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2017. 2. 26. 22:23감상/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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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드라마, 전쟁

감독: 멜 깁슨

배우: 앤드류 가필드, 샘 워싱턴, 테레사 팔머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영화에 대해서 눈꼽만큼도 기대하지 않았다.

 최근 본 어라이벌(국내명 컨택트)에 대단히 실망했을 뿐만 아니라, 헐리우드 전쟁 영화라는 것이 대개 다 비슷비슷한 플롯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봐야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전우애, 꼬장부리지만 부하를 열심히 챙기는 부사관, 반면 대체로 무능하거나 비인간적인 장교, 전장의 아비규환 너머로 닿는 명예, 사랑과 가족, 화려한 액션.

 대부분의 미국산 전쟁영화들의 고정된 레퍼토리였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 권태기에 들어선 연출과 스토리 때문에 너무나도 닳고 닳아있었다.

 그래서 나도 이 영화도 똑같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자리에 앉는 순간 턱을 괴고 '그래, 한번 해봐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내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미리 말하지만, 핵소 고지는 영화사에서 길이남을 명작은 아니다. 다시 말해, 10년 후에 '꼭 봐야할 영화 100선'따위에서 시민 케인이니 모던 타임스니 뭐 이런 케케묵은 작품들과 나란히 이름을 올릴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근래에 본 영화 중에서는 가장 인상적인 영화 중 하나였다. 평론가들이 뭐라고 씨부려대든, 나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스토리. 전쟁 영화의 스토리는 뻔하다. 특히나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 더욱 그렇다. 거기에 역사를 가미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핵소 고지는 기존 전쟁 영화에서 놓친 부분을 중점으로 다룬다. 나는 이 부분에 매력을 느꼈다.


 '신념'과 '정상'이라는 양대 주제이다.


  •  신념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당장 팔다리가 찢겨나가고 덴노헤이카 반자이하면서 일본도휘두르는 미친 놈들로 둘러싸인 전장에서 무슨 불살 신념?? 다른 동료들 다 죽일 일있나? 자기 사상만 중요하고 남 목숨은 안 중요한가?

 이 영화를 보기 전, 시놉시스만 보았을 때, 내가 느꼈던 편견이었다. 나는 은연중에 영화 속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고정된 사고를 하고 있었다.

 입대를 한다면, 당연히 총을 들어서 적을 죽여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죽을 테니까. 아니면 동료를 도울 수 없을 테니까. 그 행위에 동참하지 않는 녀석은 그냥 쓸모없는 관심병사에 지나지 않는, 철저한 비정상이라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기존에 가졌던 모든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본다면, 사실 집총거부를 해도 적을 쏘아 죽이지 않아도 전우를 도울 방법은 충분히 많이 있다. 의료 임무를 맡을 수도 있고, 지뢰 지대 극복, 전몰자 유골 수색, 대민 홍보, 숙영 및 기타 시설 건설 등 총이 필요하지 않는 수많은 일들이 이미 우리 주변에 있다. 즉, 기존의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은 그 자체로 비정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영화 속 군인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존의 세계가, 자신들을 속일 것이라는 두려움이, 인지의 영역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존감이 비정상적인 정상을 구축했던 것이다.


 일단 '정상'을 구축하면, 그 다음은 변명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없으니까, 전우에게 폐를 끼칠 것이기에, 군기 확립에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기에. 어느 하나 검증되지 않은 변명들이다. 의무대가, 정비대가, 보급대가 기타 수많은 지원 병과가 총을 잡고 자기 본래의 임무가 아니라 전투부대처럼 적을 사살하는 데에 치중한다면, 그 전투는 이미 패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적을 격퇴할 전투대가 남아있지 않다는 의미가 아닌가. 군대에서 비전투병과에 사격훈련을 시키는 것은 철조망 넘어서 보병과 같이 싸우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을 엄호할 전투병과가 전멸하였을 때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라는 의미에서 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거리를 두면 기존의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이 너무나도 형편없어 보인다. 너무나도 형편없는 변명들이 우리의 사고를 정지시키고 있었다. 이러니까 안돼, 저러니까 안돼, 그냥 그대로 해. 왜 그런지 생각하지 않는다. 묻지도 않는다. 그냥 그러니까로 퉁친다. 

 주인공은 이러한 왜곡된 정상의 세계 속에서 신념으로 맞선다. 그의 불살 신념은 종교 때문이라기 보다는 동생과 아버지를 죽일 뻔 했던, 쓰라린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소중한 사람을 죽일 뻔한 자신에 대한 실망과 살인에 대한 두려움이 결국 살인하지 말라는 기존의 종교적 가르침과 결합되어 하나의 개인적 신념이 된 것이다.


 어쩌면 위선적일지 모른다. 자기 자신은 총을 쏘지 않으면서, 총을 쏘는 다른 동료를 도우니까. 작중 내에서도 이런 의미는 아니었지만, 주인공이 자신이 너무 자존심이 강한 것이냐고 고민에 휩싸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신념이라고 해서 다 옳고 또 정당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경우에는 정당하면서도 옳았다. 그는 '살인하지 말라'라는 십계명의 교리를 교조대로 해석하지 않는다. 만약 교조적으로 해석했다면, 사람을 '죽이는' 군대에 자원입대하면서 그들을 도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미국인들처럼 일제의 진주만 폭격에 분노하고 있으며, 조국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는 군대에 입대하여, 자신은 하지 않지만 '살인'을 돕는다. 요컨대 그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때문에 피를 수혈시키지 않는 어떤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그에게 있어 '살인하지 말라'는 이중의 메세지가 있다. 하나는 글자 그대로 살인을 하지 말라는 뜻이지만, 그 너머에는 휴머니즘이라는 대의가 숨겨져 있다.

Please Lord... Help me get one more


 적과 나, 죽음과 생존이라는 냉혹한 이분법의 공간에서 그는 인간성을 잃지 않기를 원한다. 모두가 후퇴한 전장에 남아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전우를 후송하고, 심지어 자신을 죽이려 했을지도 모르는 몇몇 적들도 데려온다. 그는 총을 들지는 않았지만, 총검을 들이대는 일본군 병사에 맨몸으로 부딪칠 용기를 가지고 있으며 부상입은 이름 모를 일본군에게 붕대와 모르핀을 나누어준다.


 그는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이다. 이 때문에 주인공은 정말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아군을 지키면서, 적을 사살해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결코 부정하는 법이 없다. 

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아닙니다. 저는 양심적 협조자입니다.

 주인공의 위트(?)있는 이 대답이 이 영화의 주제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현실을 통째로 바꾸기에는 개개인은 너무나도 무력하다. 또한 통째로 바꾸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 담론을 넘어, 개개인의 생활과 삶 속에서 어떠한 일련의 방향성을 가지고 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미력한 노력을 한다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지 않을까?

 


 데스먼드의 위선적(?)이면서도 영웅적인 행적은 나에게 이러한 생각을 들게 하였다. 오늘은 인정하되, 더 나은 내일을 꿈꾸자. 

말도 안되는 불가능한 이상에 얽매여 현실을 도외시하지 말고, 또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무기력함에 변명하지 말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 정상과 비정상의 그 경계선상에 있는 무언가를 항상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사실 전쟁 영화에는 뭔가 철학적이거나 진중한 생각을 잘 안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뭔가 형이상학적인 느낌을 받았다. 중반부터 이어지는 화려하면서도 놀라운 전쟁씬은 다른 전쟁영화들보다도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솔직히 영화 초반부는 약간 지루했는데, 오키나와에 진입하면서부터 영화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연출이 너무 좋았다. 특히나 일본군이 갑자기 튀어나올 때는 정말 나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 영화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영화 중 하나로 남을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가 된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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