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대한민국 - 헬무새를 아시나요?

2017. 10. 5. 02:26감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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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대한민국 - 2점
박노자 지음/한겨레출판

 헬조선 신드롬을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헬hell은 현대성을 상징하고, 조선은 근대에서 퇴보된 사회의 모습이라나 뭐라나.

 이 대목을 읽으면서 느낌이 팍왔다. 이 사람이 어떻게 썰을 풀지. 그리고 그 썰은 하등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사실 별로 중요한 지식은 아니지만,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그 근원이 매우 쓰레기 같은 단어였다. 디씨인사이드 역사갤러리에서 대한민국과 역사를 아무런 논증도 없이 무조건 '헬조센(Hell+조센(징))'이라 답을 정해놓고 비판했던 것이 원조였다. 경제 위기와 취업 대란, 기타 사회 문제들의 악화로 자국에 비판적인 사람들, 이른바 '국까'들이 늘어나면서 역갤이 쓰던 헬조센을 가져다가 마구잡이로 써서 인터넷에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근원적인 측면을 보면 '홍어'나 '민주화당했다' '흉노족' 따위와 하등 다를 바가 없음에도, 저자는 '청년' 흉내를 내고 싶은 건지 아니면 청년들과 '소통'하고 싶은건지 이 단어를 아무런 고민없이 사용했다.

 뭐, 좋다.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쓰든 말든 나와는 관계 없는 일이다. 어차피 국경일에 태극기라도 걸 애국심도 없으니까. 대한민국이라 부르든 조센이라 부르든 알게 뭔가.



 내가 정말로 문제를 삼고 싶은 것은 헬무새다. 저자가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으니 '헬무새'라는 단어도 알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만약 모른다면, 그냥 이 글을 쓰지 말았어야 했다.

 헬무새는 헬+앵무새의 합성어로 말하는 것마다 계속 헬조선 헬조선거리는 것이 마치 앵무새와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제딴에는 '건전한 비판', '깨어 있는 시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남들에게는 그저 병X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아무런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의 울분(?)을 토해내고 싶을 뿐이다. 이들은 더러운 조센징에게 욕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이들에게는 '조센'을 더 낫게 할 능력도 의지도, 비전도 없다.

 인터넷으로 씨부리는 것을 빼면 술 취해서 거리 곳곳에 소리치고 다니는 민폐 취객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어디까지나 인상비평으로 시작해서 인상비평으로 끝난다.



 내가 이 얘기를 왜 꺼내냐 하면, 저자의 글이 헬무새의 패턴과 일치해 보이기 때문이다.

 헬무새들은 '발언의 자유'와 '건전한 비판'을 핑계로 언제나 국가 탓을 한다. 이에 반론을 제기하면 파시스트다. 음모론을 항상 신봉하고, 그것이 논파되면 '그래서 뭐?' 식으로 적반하장한다. 물론 그들이 하는 말에는 일리가 있을 때도 있다. 그들이 근거랍시고 가져오는 사건들의 소식을 들으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문제점이 보일 때도 있다.



 문제는 헬무새들이 그런 것을 염두해두고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냥 욕하고 싶은 것뿐이다. 그것이 얻어걸려서 안 좋은 상황과 맞물려 일견 욕이 '타당'해보일지 몰라도, 거리를 두고보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이 글을 보면 그런 냄새가 풀풀 풍긴다.

 학교에서 우반,열반으로 편성해 대개는 어려운 집안 환경에 문화자본이 부족한 아이들의 자존심을 어릴 때부터 짓밟으면서 미래의 승자들을 따로 키운다(p074),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세습적 신분 대신 상대방의 '능력'-부모 아파트 평수로 대표되는 경제적 능력부터 궁금해한다.(p75),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북한과 군사 안보 협력을 시작할 수 없는 일개 제후에 불과하며(p104), "북한과 연계했다"고 해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대한민국은 중간 파시즘 사회(p108)이다. 또한 30년전 대학생들은 '신식민지'와 '종속이론'을 언급하면서 자주 국가를 만들어보려 했는데 30년 후의 백화점 대학에 다니는 애들은 그걸 모른다(p179), 한국은 한-미 군사동맹을 통해 일종의 군사보호령화되었으며 중국에 대한 강경책은 지역적 안정을 파괴한다(p181), 한국증시에 외국인 자본이 많은데 이는 인도보다도 더 많아 국외 지배자들에게 종속되는 결과를 낳는다(p183)



 이것들은 내가 읽으면서 짜증났던 부분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들만 발췌한 문장들이다. 얼핏보면 맞는 말 아니야? 할 수도 있는 글도 있다. 하지만 이 글 모두 함정이 있다. 저자의 주장인 '노동 탄압하는 파시즘 사회', '주인에게 꼬리 흔들면서 능력주의라는 이름으로 자기 검열시키는 사회', '미국에게 종속된 식민지'라는 명제를 선동할뿐 아무런 뒷받침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감히 묻건대, 저자는 이 말들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말하는 것은 법적인 것이 아니라 논증, 설득을 할 수 있냐는 말이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대학교를 갈지 기술학교에 갈지 아이들의 미래를 정해버리며,

 신분 세습이 존속되어 있는 유럽 국가들의 '귀족'들은 '아파트 평수'라는 능력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으며,

 특히 영미를 비롯한 유럽 국가의 취업은 공채보다 '추천'제가 활성화되어 '정실주의'가 문화화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며,

 능력주의가 비판받아야 하면 현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제에 대해서도 그런지 궁금하며,

 북한과의 군사 안보 협력을 '왜' 해야하는지 모르겠으며,

 그것을 하지 않는다고 왜 미제의 제후로 폄하되어야 하는지 그 논리적 인과관계를 알 수 없으며,

 국민 대다수가 반기는 통합진보당의 해산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가 왜 '중간 파시스트 단체'인지 모르겠다.

 이미 철지나고 학술적으로 검증되지도 않은, 철없던 운동권들이나 좋아했던 종속이론을 왜 지금 대학생들이 알아야 하며, 

 북한에 대한 노골적 지원, 남중국해 분쟁, 동북공정, 자기들은 하와이까지 감시할 수 있는 레이더를 보유했으면서 싸드에 대해서는 경기를 일으키는 내로남불, 서해안 어업 분쟁, 센카쿠 분쟁, 이어도 분쟁, 티베트 탄압, 홍커우, 국가 지도자가 대놓고 '한국은 수천년 간 중국의 일부'였다고 발언하는 국가가 일으키는 '지역적 안정' 파괴는 왜 입을 쳐 다무는지 궁금하며,

 유럽 선진국들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정작 그들도 하는 국가 성장과 경제 활력을 가능케하는 해외자본 유치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빨갱이식 논리를 들이대는지 모르겠다.



 한국은 X나게 살기 어려운 나라인 것 맞다. X같은 나라인 것도 맞다. 헬조선인 거 맞다.

 굳이 쉴드칠 생각 없다. 근데 헬무새처럼 책임지지도 못할 X같은 소리, 혹은 안 좋은 분위기 이용해서 자기 사익 채우려는 소리는 안 했으면 좋겠다.



 저자는 자신의 울분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토로한다. 그런데 그 울분을 설득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딱 그냥 맑스주의의 계급 투쟁을 방해하는 모든 것에 대한 욕에만 관심이 쏠린 채 이 글이 어떻게 읽힐지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300페이지에 걸쳐서 온갖 욕을 다하신 고매하신 저자분. 그런 그라면 '헬조선'을 구할 타개책이라도 있지 않을까?



  지방대 차별하지말고 대학 비정규직과 연대하자(p53), 소비자들은 땅콩사태를 보면서 반성해야 한다(p72), 능력주의는 허구에 불과하다, 남들과 연대하면서 살자(p78), 노동자로서 자각을 가지고 함께 투쟁하자(p85), 한국은 민영화, 시장화, 외국자본의 침윤 속에서 착취당하니 민중이 탈식민지화를 위한 투쟁에 앞장서자(p183), 미국은 잠재적침략국이니 영세중립의 가능성을 고려해보자(p189)



 뻐킹 아메리칸! 미국 나빠욧! 모두 연대해야 해요! 연대해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 그것이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나는 아무 관심도 없지만 일단 투쟁해야 해욧! 투쟁! 투쟁! 안 거들면 개돼지! 식민지 조선 아웃! 북한 괴롭히지 마요!


 나에게는 책의 모든 내용이 이렇게 들린다. 아무리 책을 찾아봐도 '건설적' 비판이 없다... 그나마 흉내라도 낸 것은 조세 인상밖에 없는데 장난하는 건지?

 장담하건대 당장 유럽처럼 17%~20%로 소비세 인상하고 월급 50%를 세금으로 걷어가면 광화문 광장에 촛불이 어마무시하게 들어설 것이다. 아마 503 때보다도 더 많을 걸? 감당할 수 있나?



 중학생조차도 하지 않을 인상비평 일관과 설득을 위한 기본적인 논증조차도 허하지 않는 반지성주의. 무조건 욕부터 하고보는 습관. 자기가 정의라고 믿고 있지만, 주변에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편협함. 이 모습이 저자만의 모습일까? 내가 봤을 때, 헬무새들의 공통적인 습성이다.



 여러모로 실망스러웠다. 학술적인 이야기는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근거라도 가지고 글을 쓸 줄 알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이름보고 책 고르면 안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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