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키리냐가 -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던 곳

2016. 8. 30. 11:39감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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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냐가 - 10점
마이크 레스닉 지음, 최용준 옮김/열린책들

 키리냐가는 키쿠유족의 전통을 완벽하게 되살린 유토피아 행성이다. 이 행성의 지도자인 코리바는 기존 사회에서 자신들의 전통이 사라졌음을 개탄하고 키리냐가에서만큼은 전통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며, 키리냐가에서 현대 문명과의 접촉은 철저히 금지한다.

 

그러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현대 문명과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완전한' 전통은 위협받게 된다. 완전한 전통을 고수하는 코리바는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현대 문명의 일부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고통을 강요한다. 이에 반발하는 마을 사람들은 결국 코리바와 갈등을 빚고, 결국 그는 지구로 쫓겨난다.

 

 그와 마을 사람들의 갈등에서 '전통이란 정체를 통해서만 보존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코리바는 작 중 내내 전통은 수많은 요소로 이루어져 하나라도 바뀌면 전통이 위협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전통이 '하나의 완전한 형태 혹은 형식' 이어야 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전통은 유기체와 같아서 그 내용이 시대에 따라서 추가되고, 사라지기도 하며, 변형되기도 한다. 즉 애초부터 전통=하나의 완전한 형태라는 그의 전제에 입각한 유토피아 통치 정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오히려 그의 주장은 전통을 한 시대의 문화로 박제하여 전통을 훼손시켰고, 결국 은데미에 의해 처절하게 폭로되어 지탄받는다.

 

 전통이란 과거와 현재의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국 문물을 받아들인다고 전통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며, 전통 음식을 즐겨 먹는다고 전통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저급한 이분법은 전통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전통은 공동체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그 정체성은 사상, 관습, 행동 양식, 문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과정 그 자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지, 특정한 어떤 요인 혹은 형태로 대변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코리바가 주장한 유토피아는 처음부터 어디에도 없었던 곳이다. Utopia라는 말 자체가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이 소설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리바가 주장한 '하나의 전통'의 순수성은 뒷방 늙은이의 한탄으로 여길게 아니라, 진지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볼만 하다. 주위를 둘러보자. 한식당이라면 으레 '몇 년 전통'이란 말이 붙여있다. 보통 20년은 기본이고, 심하면 50년까지 있다. 그러나 그 식당들 모두가 그러한 전통을 가지리라곤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또 사극은 어떠한가. 그저 멋있게만 보이면 된다며 국적 불명의 의상을 준비하는 코디네이터, 역사적 사실은 해석에 따라 다르다며 아전인수격으로 스토리를 지어내는 작가들이 방송국의 주류에 속해있다. 우리 시대에 전통은 그저 상품을 팔기 위한 브랜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전통의 의미가 사회 전반적으로 퇴색해가는 이 시대에서 전통의 순수성은 점점 절박해지고 있다. '지식인' 코리바는 '야만인' 행세를 함으로서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에게 묻고 있다. 과연 너는 누구인가. 무엇으로부터 존재하는가.

 

 이 소설이 현재와 타협하지 못한 채로 끝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너무나도 씁쓸하다. 전통과 현대 문명의 화해로 끝나는 로버트 실버버그의 황야 속의 길가메쉬(Gilgamesh in The outback)와 비교하면 더욱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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