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 분쟁 - 유럽의 분단국, 이번에는 통일이 될까

2016. 10. 8. 13:35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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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로스 분쟁

 

키프로스 기본정보

 

 -면적: 9,251㎢(한반도의 1/24 크기)                   

-영군 기지: 총면적 256㎢, 전 영토 2.8%를 차지

-북 키프로스: 3,355㎢, 전 영토의 37%를 차지

-인구 

 

북 키프로스: 21만 5천명

남 키프로스: 796,9000명 (2008년 기준)

-민족

그리스계(80%), 터키계(18%), 기타(2%)

 

 

키프로스의 역사

 예로부터 이집트, 앗시리아, 로마등 많은 민족들의 지배를 받았고 중세에 프랑스 영주가 키프로스 왕국을 세웠으나, 해체되어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 오스만 제국이 점령하였다. 러시아-투르크 전쟁 이후 행정권이 대영제국에게 양도되었으나,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뒤에야 키프로스는 영국에게 병합되었다. 이에 키프로스 주민들은 반영민족운동을 일으켰고, 1931년엔 반란을 일으켰다. 그 후 꾸준한 반영운동으로 1958년 영국이 타협안을 내놓았으나 불합리한 조항으로 키프로스 주민의 반대에 부딪쳤다.

1959년 2월, 키프로스를 둘러싼 그리스와 터키의 갈등이 소련을 견제할 반공세력의 분열로 이어질까 두려워한 미국의 중재로 취리히에서 터키, 그리스의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양국과 영국, 키프로스 대표가 포함된 회의를 런던에서 개최하여 취리히-런던 협정으로 불리는 키프로스 독립협정이 성립되었다. 이 협정은 그리스, 터키, 영국 3개국이 키프로스에 소수의 병력을 주둔시키며, 합의된 내용의 위배 가능성이 있을 경우 3개국이 모두 개입할 권리를 갖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합의에 따라 1960년 8월 16일, 키프로스는 정식으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에노시스 운동

 1830년, 10년에 걸친 전쟁 끝에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면서 키프로스 섬의 그리스계 주민들 사이에서 그리스 본토와의 통합을 원하는 에노시스 운동이 일어났다. 그리스계의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우는 에노시스(Enosis) 운동은 반영운동에 앞장섰고 키프로스의 독립을 쟁취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나, 이 운동은 그리스와의 합병을 주장하기에 독립을 원하는 터키계 주민들과의 갈등을 빚었다. 1960년 8월, 키프로스가 독립함으로서 공식적으로는 포기되었지만 그리스계 지도자들은 계속 이 운동을 벌였다. 북 키프로스의 독립 선언도 이 운동으로 인한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키프로스의 분단

-1960년대

 1963년 11월, 마카리오스 3세 대통령이 내각과 국회등 그리스계와 터키계 출신이 동등하도록 규정된 헌법을 개정할 것을 제안하였고, 이에 터키계 주민들은 자신들의 보호수단을 제거하는 것이라며 일제히 반발하여 그리스계와 터키계 주민들 간에 무력충돌이 벌어졌다. 

 1964년, 국제연합 평화유지군 약 7,000명이 파견되고, 두 민족의 분쟁을 막기 위해 ‘그린라인(Green Line 또는 아틸라 선)’이라는 장벽이 세워졌다. 

 1967년, 그리스계 보안군이 터키계 마을 2개를 습격하자 양측 주민들의 대규모 충돌이 벌어졌다. 또한 그리스와 터키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어 터키는 그리스 접경 지역과 키프로스 인근 항구로 병력을 이동시켰다. 미국의 중재로 위기 상황이 해소되었으나 그리스계 보안군 총수인 그리바스(Georgious Theodoros Grivas) 장군이 사임했을 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리스에 우익 군사 정권이 등장하면서 긴장이 더욱 고조되었다. 그리스 군사 독재 정권의 지원으로 키프로스에 돌아온 그리바스는 EOKA(키프로스 민족 해방 조직) 게릴라를 조직하여 에노시스 운동에 앞장섰다.

 

 ▷그리스와 터키의 갈등 심화: 본래 그리스와 터키는 에게해 분쟁이 있었다. 1973년 11월, 터키 정부가 에게 해 대륙붕의 절반에 대한 터키의 영유권을 주장하였다. 국영 석유 회사에 에게 해의 석유 탐사권을 허가해 줌으로서 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 분쟁은 키프로스에서의 갈등을 심화시킨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에게해 분쟁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1970년대

 1974년 7월, 그리스계 보안군과 EOKA가 연합하여 온건파인 마카리오스 정권을 전복한 뒤, EOKA(키프로스 민족 해방 조직) 지도자인 니코스 삼프손(Nikos Sampson)을 대통령으로 추대하였다. 그리스와의 합병을 우려한 터키계 지도자들은 키프로스의 독립을 위해 영국과 터키에 개입을 요청했으나, 영국은 거부하였다. 터키 정부는 4만 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키레니아에서 니코시아에 이르는 25km의 회랑 지대를 장악하였다. 그 후,그리스계 게릴라들의 쿠데타는 1주일만에 진압되었고, 이 전쟁의 패배로 타격을 입은 그리스 군사 정권은 학생들의 시위로 무너졌다. 쿠데타 이전의 정부가 복구되었으나 터키군이 북부지역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분할이 계속되었다. 영국, 그리스, 터키가 제네바에서 평화 협상을 시작했으나, 터키가 북부지역의 자치를 전제로 하는 연방 국가 창설을 주장하여 결렬되었고, 결국 내전이 다시 시작되어 터키군이 북부의 전 지역을 점령하였다.

 1975년, 빈에서 UN의 중재로 양측 간 회담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국가 체제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으로 합의에 실패하였다. 이에 터키는 일방적으로 북부 지방에 터키계 키프로스 연방을 발족시켰다. 이 회담에선 터키계 주민의 북부 이주와 그리스계 주민의 남부 이주를 허용한다는 내용만 합의하였다.

 

 

 

-1980~90년대

 1981년, 터키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키프로스와 에게해 분쟁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였다. 1983년, UN 총회에서 터키군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터키는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이라는 독립 국가를 일방적으로 선포하였다. 이는 전 세계의 비난을 받았고, 북 키프로스를 승인한 나라는 현재까지 터키밖에 없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터키의 민정 복귀로 그리스와의 친선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었고, 1988년에는 양국 정상 회담이 열렸고, 터키 총리가 1952년 이후 처음으로 그리스를 공식 방문하였다. 바실리우(George Vasiliou) 남 키프로스 대통령은 터키 수상을 방문하여 키프로스 내 그리스계 무장 세력 해산을 약속하고, 대신 북키프로스에 주둔한 2만 9천명의 터키군 철수를 제안하였으나 북키프로스는 거부하였다. 이후, 북키프로스 당국은 터키군 진주 15주년을 축하하는 행사에서 데모를 벌이던 100명의 그리스계 주민들을 체포하였다. 이로 인해 정상 회담 일정이 연기되었고, UN은 터키계와 그리스계의 대화를 유도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키프로스 통일에 대한 그리스와 터키의 입장

  터키: 터키계의 자치를 위해 국가 연합 수립과 터키와 키프로스 공화국이 EU에 공동 가입해야한다고 주장.

  그리스: 터키군의 철수와 연방 국가 수립을 주장.

 

 1997년, 유럽 연합은 남 키프로스를 가입 대상국에 지정한데 이어 터키를 가입 후보국으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12월, 룩셈부르크 정상 회의에서 터키의 가입을 불허하자 터키는 EU에 대해 경제 제재 조치를 선언하고, 북키프로스 병합을 감행하여 분위기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리스는 키프로스 남부에 군사 시설을 설치하여 그리스와 터키 간의 대립이 고조되었다. 1999년 8월, 터키에서 발생한 지진을 계기로 국제 사회는 터키를 지원해주었고, 그리스 외무 장관도 터키를 방문하여 화해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2000년대

 

 2002년 11월, EU는 키프로스 문제 해결을 위해 터키와 키프로스의 유럽 연합 동시 가입 허용 조건으로 UN에서 제의한 스위스 식 연방제 통일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가입 허가 예정 시기인 2004년까지는 키프로스가 만약 통일을 이루지 못할 경우,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그리스계 키프로스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계획이었다. 남 키프로스는 UN 통일안 수용 의사를 밝혔다.  터키는 남 키프로스의 EU 가입을 인정하지 않으나, 자국의 가입을 위해 UN 통일안을 지지하였다. 2003년, 북 키프로스 주민들은 UN 통일안을 거부하는 라우프 덴크타쉬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였다.

 2004년 4월, 남부와 북부 키프로스에서 실시된 UN 통일안 국민투표에서 북 키프로스 주민의 64.9%가 찬성표를 던진 반면, 남 키프로스 주민은 75.8%반대표를 던졌다. 이에 국제 사회는 남 키프로스를 비난했다. UN 키프로스 대사인 알바로 데 소토는  “키프로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특별하고 역사적인 기회가 무산됐다. 키프로스에 위치한 나(UN)의 사무실이 조만간 폐쇄될 것”라고 밝혔다.

 타소스 파파도풀로스 남 키프로스 대통령은 “UN 통일안의 유일한 수혜자는 터키와 북부 키프로스일 뿐”이라고 말했다.

 2004년 5월 1일, EU은 키프로스의 가입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키프로스 전체를 승인하되 EU의 법률과 회원국의 혜택은 남부와 북부 키프로스가 통일할 때까지 그리스계가 통치하는 남부에만 국한한다는 단서 조항을 내걸었다.

 2005년, 터키의 EU 가입이 거부되었다.

 

 ◆터키의 EU가입에 대한 입장

 EU의 입장: 터키가 관세동맹에 의거해 남 키프로스에 항구와 공항을 개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터키의 입장: 북 키프로스에 대한 경제제재를 먼저 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의 입장: 터키는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약하기에 EU의 지원금을 많이 받을 것이다. 7000만명의 인구로 기존에 있던 EU 내의 우위가 사라질 것이며, 많은 터키인들이 유럽으로 유입되면 자국의 노동 시장이 혼잡해 질것이기에 터키의 EU가입을 반대하고 있다.

 영국, 스웨덴, 이탈리아의 입장: 터키의 가입 조건을 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08년 2월, 남 키프로스는 총선에서 공산당 크리스토피아스가 당선되면서 통일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2008년 4월, 분단 장벽이 44년 만에 개방되었다. 2009년, 그리스 총선에서 사회당이 승리하였다. 그리스 총리는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터키를 찾은 데 이어 19일 남 키프로스를 방문해 디미트리스 크리스토피아스 대통령과 회담을 하였다.

 

 2009년, 영국은 협상 진전을 위해 키프로스 내 영토 절반을 반환할 것을 제안했지만 남 키프로스는 이것이 통일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미온한 반응을 보였다.

 

 2010년 2월, 반기문 사무총장이 키프로스 통일을 지원하기 위해 키프로스 방문. 남키프로스의 크리스토피아스 대통령과 북키프로스의 탈라트 대통령이 만나 통일 협상을 가짐.

 2010년 4월 20일, 북 키프로스 대선에서 민족주의자인 데르비스 에로글루 총리가 당선되면서 2국가 체제를 주장하여 통일 협상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디미트리스 크리스토피아스 남키프로스 대통령은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U는 터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2011년 9월 19일, 남 키프로스가 키프로스 남부 연안의 석유 채굴 작업을 착수하고, 미국 기업 노블 사에게 탐사를 맡겼다. 터키는 키프로스의 모든 자원은 남-북 키프로스가 공유해야 한다고 하며 탐사 연기를 요구하였다. 만약 탐사를 계속한다면 북 키프로스 자원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2014년 2월 11일, 연방 정부 구상을 위한 통일 협상이 재개되었고, 국민투표 실시를 합의하였다.

 

 2016년 1월 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남북 키프로스 정상이 키프로스 통일이라는 주제로 포럼 개최. 영국, 그리스, 터키 3국 모두 통일을 지지하고 있으며, 통일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중이라고 밝힘. 다만, 분단으로 인해 손실된 재산권 보상 문제가 남아있다고 하였다. 

 

 

 출처 및 참고문헌

 이정희, 구동회 지음, 「세계의 분쟁지역」,푸른길 출판사

 마스다 다카유키 지음, 이상술 옮김,「한눈에 보는 세계 분쟁 지도」, 해나무 출판사

 

 

 

북키프로스 강경파 당선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118969

남키프로스 크리스토피아스 당선

http://www.segye.com/Articles/NEWS/INTERNATIONAL/Article.asp?aid=20080225002436&subctg1=&subctg2=

반 총장, 키프로스 통일 협상 타결 확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3103343

영국, 키프로스 내 자국령 반환 제안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2969989

35년만 최대 호기

http://news.donga.com/3/all/20091030/23777883/1

키프로스 분단 장벽 개방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040401037732244002

터키 EU 가입 부분중단 위기 맞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12/10/2006121000057.html

강한 유럽 물거품 되나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5052570352

터키 EU가입 안개속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4121470498

유엔 통일안 부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404251908451&code=97020573

남 키프로스 정부 통일안 수용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0274855

 

남 키프로스 인구

 

http://www.mof.gov.cy/mof/cystat/statistics.nsf/All/CBAA25D58105CAF3C225767B00381C70?OpenDocument&sub=1&e=

북 키프로스 인구

http://grc.mofat.go.kr/kor/eu/grc/legation/add/cypress/index.jsp

미-터키 분쟁

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529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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