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19. 00:07ㆍ카테고리 없음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박민규 지음/한겨레출판 |
이 소설은 80년대 야구 팀인 삼미 슈퍼스타즈와 당시 야구계의 현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종의 회고록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연전 연패의 삼미 슈퍼스타즈는 한국 야구 사상 유례없는 기록을 남겼는데, 그 흑역사는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팀의 경기를 보면서 자라온 주인공은 외환 위기 때, 실직하면서 그 팀을 회상하고, 또 그에 그치지 않고 다시 팬클럽을 부활한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다른 프로 야구팀으로 비유되는 '평범한 것이 꼴찌가 되는' 무한 경쟁 사회를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라는 모토의 삼미 슈퍼스타즈로 비판한다.
경쟁을 생활의 제1조로 삼는 현대, 특히 그 중에서도 삼최증(最高,最古,最大)에 빠져 착실하게 무한 경쟁 구도에 진입하고 있는 동북아 3국에 있어 이러한 비판은 상당한 현실성을 가진다. 작가는 단순히 이것이 나쁘다는 비판에만 그치지 않고, 주인공의 삶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서, 다시 평범한 것이 평범한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말자고.
그러나 그의 외침은 다분히 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외침의 과정과 결과가 너무 작위적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조성훈이 일본가서 있었던 일이라거나, 일본 부잣집 4남(이름 기억안남)이 조성훈을 대폭 자원하고 삼미 슈퍼스타즈 팬클럽을 지원하는 것은 뭐랄까, 갑자기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형식을 파괴하는 문체와 사건과 인물과의 높은 밀착성으로 이때까지 흥미롭게 읽어왔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기존에는 없었던 인물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거의 배신감까지 느꼈다. 아마 반전용이었다면 대성공이었을 것이다. 복선도 없는 거의 쓸모없는 반전이지만. 사실 이런 기법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하여 작가들이 이야기를 제대로 마무리 할 능력이 없어 작품 외부의 힘을 빌어 끝내는 것이다. 앞서 말한 4남은 앞 200 페이지 내에서 언급도 되지 않던 인물로, 조성훈이 마지막에 이야기하면서 겨우 소개될 뿐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뒷부분에 설명을 붙여도, 애초에 이 스토리에 포함되어 있지 않던 인물을 등장시켜 기존의 문제들을 다 마무리지어 버리는 것은 거의 독자를 우롱하는 짓에 가깝다.
또 이 소설에서 아쉬웠던 점은, 조성훈의 설교다. 작품 막바지 100페이지에는 조성훈이 일본가서 겪은 일과 4남과의 인연, 그리고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설교를 하는데, 솔직히 그냥 넘기고 싶을 정도로 지루하며 무의미했다. 특히 자본주의 비판 부분에서는 갖가지 비유를 들면서 설명했지만, 애초에 이 소설의 주제를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모두 독자에게 풀어서 떠먹여주려는 의도가 너무 보여서 읽으면서 너무 짜증이 났다. 앞에서는 대화라고 했지만, 사실 대화도 아니다. 그냥 일방적인 전도다.
그것도 간략화해서 위트있게 요점만 말하면 모를까 온갖 장광설를 풀어놓으면서 이 소설의 주제를 마구 파헤쳐놓으니, 읽으면서 상당히 짜증이 났다. 물론 모든 작가들은 독자들이 자신의 주제를 이해해줬으면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아예 떠먹여주는 식으로 풀이해서는 결코 안된다. 작품을 망치며, 독자는 싫증을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팬클럽의 친선 경기 부분. 내가 가장 싫어했던 부분이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새로운 팬클럽은 다른 아마추어 팀과 친선 경기를 하게 되는 데, 경기 도중 몇몇 팀원이 우수한 성적을 냈다. 그러나 삼미 슈퍼스타즈 팬클럽은 그 팀원을 비난하면서, '잡기 힘든 공은-' 정신을 되새기라고 한다. 나는 이 부분이야말로 이 소설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열거한 단점들은 글자 그대로 단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부분은 단점이 아니라, 거의 뭐랄까. 패악에 가깝다.
작가는 경쟁이 보편화되면서, 자신들이 피해를 보았기에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생각해서 이 부분을 쓴 것 같은데, 역설적으로 이 부분이 가진 모순 때문에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작가가 말했듯이 경쟁을 만능시하여 너나 할 것없이 무조건 경쟁해야만 하도록 시키는 것은 분명 사회가 부과하는 '합의 테러'이다. 하지만 그에 대항하는 안티테제로서의 팬클럽의 행위 또한 그와 같은 '합의 테러'이다. 아니 같지도 않다. 오히려 더 심하다. 사회가 부과하는 '경쟁 테러'는 거부의 자유(주인공 일당이 그것을 증명한다)가 있지만, 팬클럽이 부과하는 '잡기 힘든 공- 테러'는 거부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은 작가가 이때까지 그토록 설파했던 비판을 무력하게 한다. 자신도 똑같이 하는 데, 사회는 왜 그것을 고쳐야 할까?
리뷰를 쓰면서 이 소설이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라는 책을 모방했다는 말도 있는데, 그 책은 안 봐서 모르겠으니 넘어간다. 중반부까지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었는데, 끝부분 때문에 호감이 급하락해서 상당히 아쉬웠다.
어느 날, 이 책의 저자 박민규가 인터넷 상의 글을 표절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참 착잡했다. 단순히 단어나 설정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글자그대로' 베낀 수준이었던 것이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프로 정신을 그렇게 비판하던 자신이 이제 다른 사람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훔쳐, 자본주의식으로 팔아먹고 있는 것 아닌가. 한겨레 출판사도 이를 막지않는 것을 봐서는 동조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결국 이 책을 보면서 느꼈던 생각들이 허사로 돌아갔다. 문장과 서사가 아름다웠지만, 그 소식을 듣자마자 조소와 냉소만 보낼 뿐이었다. 역시 글이라는 것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법인걸까. 이전에는 이 책에 별 3개를 줬지만, 이제는 1개로 깍는다. 표절작에 1개도 아깝지만, 글은 꽤 잘 써서 남긴다.
박민규 작가가 진정으로 반성한다면, 이 책을 내려야 할 것이다. '프로'가 아닌 '팬'으로서 자신의 명예와 위치에 대해서 너그러워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된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정말 저자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짓을 하는 것도 마지막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