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7. 20:48ㆍ감상/게임
단간론파 V3는 단간론파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동춘동 유괴 살인사건 때 겜등위가 순전히 자의적으로 등급분류를 거부한 이후,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스팀에서 단품은 지역락이 걸려있으며, 단간론파 꾸러미를 통해서 구매하는 수 밖에 없다.
아래 부분부터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1. 스토리적인 측면
V3는 1과 슈단간과는 스토리적인 측면에서 구별된다. 단간 1~3의 주 무대인 키보가미네 학원에서 벗어나 '사이슈 학원'이라는 새 무대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V3의 흑막은 이상하리만큼 살인게임의 '시작'에 집착한다.
이틀이나 기다려 주고, 그 마저도 '동기 비디오'로 낚아서 성공한 1의 에노시마 준코
역시 게임 시작 전에 행복한 바캉스 즐기게 해준 다음,
이틀 기다려주고 그 마저도 '동기 비디오'와 '배신자의 존재'로 낚아서 게임 시작에 성공한 2의 또노시마 준코
단간3는 등장인물들이 알아서 시작해주셨고(....)
그런데 V3는 아예 대놓고 시작하지 않으면 '다'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전통의 동기비디오는 뒷전인데, 이전 시리즈는 동기비디오를 통해서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살인하게 만든 반면 이번 작은 노골적인 협박으로 시작하게 한다.
즉, 흑막은 살인게임을 기다려줄 여유가 없다는 복선인데 이는 결말의 전개를 염두에 둔 듯하다.
1-1. 등장인물들의 반응 비교
1편: 시리즈 사상 최악의 혐성
첫 살인시도자는 고민도 안 하고 살인 시도하다가 역으로 발린다.
메인 히로인일 거 같던 호감 캐릭이 동기비디오를 보자마자 눈 뒤집혀서, 친한 척하던 주인공에게 누명씌우고 만만한 놈 하나 낚아서 죽이려다 발려서 역으로 죽임을 당한다.
죽인 놈도 웃긴데, 자기가 발라서 살인미수범이 화장실로 도망가서 문 걸어 존버하니까 일부러 드라이버를 가지고 와서 문을 따서 죽인다.
플레이 당시에는 묘사 때문에 눈치채지 못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분명 극한상황이기는 한데, 이해하기에는 해결 방법이 너무나도 명확하다.
마이조노는 나에기에게 의지할 수 있으니 상담할 수 있고, 레온은 마이조노가 도망간 시점부터 할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작중 내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다른 방 두드려서 사람들 나오게 할 수도 있고, 아예 가구로 화장실 문을 막아놓을 수도 있다. 상황이 급박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기에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굳이 공구를 가지고 와서' 문을 계속 따서 굳이 죽인 다음에, 현장을 치운다. '거의 미리 생각해 놓은' 수준의 행동이다.
1편의 등장인물들의 인성은 단간 시리즈 사상 최악인데 흑막을 제외한 5명의 검정 중 단 2명빼고는 살인 사유가 참 거지같다.
챕터1(과잉대응), 챕터2(뜬금없이 급발진), 챕터3(돈+2D), 챕터4(자살), 챕터5(흑막의 무고)
챕터4부터는 살인사유로도 볼 수 없는 것들이고, 1~3가 '진짜' 살인사유인데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검정만 인성이 안 좋냐면 그것도 아니다. 히로인인 키리기리는 아예 자기 살려고(처형이 중지되자 구하러 와주긴 하지만, 본인이 중지시킨 것도 아니다) 대놓고 주인공을 처형시켰고, 하가쿠레+야마다+후카와는 없느니만 못한 쓰레기 캐릭터이며, 토가미는 아예 살인게임을 즐긴다는둥 트롤링이나 한다(+역대 트롤러 캐릭터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하는 게 없다).
시리즈 전통의 트라이얼 포인트 겟터(본 작품의 추리를 담당하는 캐릭터) 주인공, 히로인, 트롤러 중 두 놈부터가 글러먹은 것이다. 마이조노까지 합하면 셋인가.
아사히나, 오오가미, 이시마루, 주인공 정도가 정상인이다. 16명 중에 4명만이 정상인이라니.
2편: 시리즈 사상 가장 높은 단결력
많은 사람들이 1편보다 슈단간을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다. 슈단간의 등장인물들은 '친해질 기회'가 있어서였는지, 이상하리만큼 단결력이 높다.(아마 1편의 반발심리 때문인지도)
첫 살인이 1편처럼 과잉대응 비슷하게 촉발되었지만, 검정은 이에 대해 다른 인물들에게 명백히 사과하고 반성한다.
이어지는 4번의 살인도 챕터2(과거 친족 살인에 대한 원한), 챕터3(절망병, 사실상 불운), 챕터4(자기 희생), 챕터5(의도적인 자살) 등 개인적인 이해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3편: 어떻게 보면 가장 현실적
이쪽은 아예 시작부터 흑막을 찾으려 한다. 사람들이 살인 저지르지 않을 것 같으니까 전체 몰살 리미트를 걸었는데, 이마저도 2시간 전까지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도 살인 게임에 의한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을 보면 해당 상황에 처할 때 가장 현실적인 반응이다. 아카마츠가 투포환을 이용하여 살인을 시도했으나, 그것은 살인게임을 주도한 흑막을 제거하기 위했던 것이다.
이마저도 실패하니까 흑막은 아예 첫판부터 밑장을 빼버린다.
룰을 자기 마음대로 변경하는 것은 시리즈 내에 계속 있어왔으나, 게임의 근본인 첫 판부터 속이는 것은 전례가 없던 짓이었다. 그만큼 살인 유도가 어려웠던 것이다.(+흑막이 처형당하면 게임이 진행이 안되니까)
서로가 서로를 저격질하는 1편과 우리는 가족 일변도의 2편과는 달리 3편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어떻게 보면 가장 현실적인데, 애초에 보면 얼마나 봤다고 살인 게임이 진행되는 와중에 서로 적대 or 화합으로만 지낼 수 있겠는가. 필요할 때 협력하고,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살인 사유도 챕터1(흑막 제거)과 챕터5(살인게임 폭파)를 제외하고는 다 '설정질'에 유도된 것이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다.
1-2. 등장인물들의 추리
1, 2편에서 추리란 주인공, 히로인, 트롤러가 하는 것이었다. 나머지 인물들은 학급재판에 들어가면 그냥 헛소리만하면서 대사 분량이나 챙겼다.
그러나 V3는 등장인물 나름대로 '추리' 비슷한 것을 한다. 심지어 의외로 그것들이 진실에 가까운 적이 상당히 많다.
제작진이 V3에 상당히 힘을 줬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1-3. 모노쿠마
1편은 '살인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오오가미 사쿠라를 준비했고, 2편은 추태라고 보여줄만한 게 딱히 없었다.
그런데 V3의 모노쿠마는 정말 역대급으로 추하다. 달리 말하면 추해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등장인물들에게 몰리는 것이다.
챕터1과 챕터5를 제외하면 모두 주작질로 속여 얻은 살인이며, 챕터1은 아예 노골적으로 판을 바꿨다. 주작질이 통하지 않은 챕터5에서는 그야말로 '범인'을 주인공 일행에게 '검증'받는 지경까지 내려왔다.
숨겨진 공포였던 1편과 절대자의 위치에 있던 슈단간과는 달리, 이건 뭐... 동네북 수준이다. 나중 가서는 로봇 다섯 놈이 날아다니는 로봇 하나를 못 잡아서 쩔쩔맨다.
1편은 그 수많은 모노쿠마를 단 한명이 조작해야 해서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V3은 아예 '팀' 단위인데도 이 모양이다. 이루마의 EMP, 원격조종기의 발명을 용인하는 거는 물론이고, 키보의 연구교실에 대량의 무기를 갖다 박아놓는 것은 대체...
1-4. 메타픽션적 소재
V3는 일반인들을 '납치'(프롤로그 참조)하고 세뇌해서 강제로 살인 게임 방송을 진행하는 내용이다. 시청자들의 '수요'가 있기에 살인게임이 53번째(정확히는 '픽션'을 빼야 하지만)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다.
등장 인물들의 모든 성격과 재능, 추억은 임의로 부여된(픽션) 것이며, 실제로는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모든 것은 거짓이었고, 단순히 외부의 필요에 의해서 진행된 가짜 이야기였던 것이다.
시로가네의 주장으로는 살인게임 인터뷰를 통해서 뽑았다고는 하지만, 프롤로그에서 참여 계기가 명백하게 납치로 결론이 나면서 결국 살인 게임은 현실(시청자 및 팀 단간론파)에 의한 부당한 폭거로 결론이 난다.
여기서 이 게임을 진행한 플레이어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플레이어는 살인게임을 진행시킨 싸이코패스인가? 아니면 등장인물들 해방시킨 영웅인가?
스탠리 패러블과 스펙옵스: 더 라인 같은 메타픽션 작품들은 플레이어를 선을 행하지 않는 '악'으로 규정한다. 게임을 종료하여 불합리한 진행에 거부하지 않음을 직간접적으로 비난한다.
이 게임들은 대부분 1인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비록 등장인물이 있더라도 그 캐릭터=플레이어 자신으로 동치시키겠금 감정선을 조작한다.
가령 스펙옵스: 더 라인에 마틴 대위라는 캐릭터가 있지만 총을 쏜 것은 마틴 대위가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V3는 조금 다르다. 플레이어의 시점이 미세하지만 바뀐다. 처음에는 아카마츠, 사이하라 나중에는 키보와 유메코, 하루카와의 시점이 되기도 한다.
V3의 플레이어의 시점은 해당 등장인물의 시점을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1-5. 각종 떡밥
V3는 유독 해결되지 않은 떡밥을 잔뜩 뿌리고 끝났다.
1. V3의 세계관은 실제로 평화로우며 기존 단간시리즈는 정말로 픽션이었나.
2. 분명 일반인이었을 이루마의 발명품(EMP해머, 전파방해 수류탄 등)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3. 시로가네 츠무기는 정말로 흑막이 맞는가.
4. 대체 이 방송이 왜 제재를 받지 않는가. 등등
특히 흑막인 시로가네 츠무기는 뺀질거리면서 뒤에 빠졌던 역대 최종 보스와는 달리(아.. 텐간+세뇌돌이 빼고) 목숨걸고 살인게임에 참여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시로가네가 게임에 참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정말로 방송 팀의 일원이라면, 사이슈 학원 바깥에서 모노쿠마나 조종해도 될 일이다. 굳이 학원 내에 기억 조작기를 설치하고, 그걸 들켜 자기 목숨 걸어야 할 이유가 없다.
아마미 란타로가 전회차 살인 게임 생존자로서 강제로 게임에 참여했듯이, 시로가네 역시 강제로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로가네가 처음부터 흑막이었다면, 처음 프롤로그 때 모노쿠마가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설정 부여 후, 다시 진행된 프롤로그부터 모노쿠마가 등장하였다. 모노쿠마는 시로가네에게 생산권한이 주어졌기에, 흑막이라는 설정을 부여받은 다음에 살인 게임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흑막의 설정은 범죄의 코스플레이어('모방범')이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챕터 6에서 밝혀진 진실을 대면하면서, 자신도 이를 당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초고교급 탐정이니 마술사 등이 다 임의로 부여된 설정인데, 흑막도 설정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픽션이 사실이 되는 작품의 주제처럼, 최종 보스인 시로가네도 흑막이라는 픽션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애초에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밖으로 나가봤자 환영받을 수 없다. 이미 이 게임에 참여, 그것도 흑막으로 참여되어 버린이상 살 수 있는 길이 없다.
그래서 최후까지 자신의 역할에 몰입한 것이 아닐까 싶다.
V3를 플레이 하고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픽션과 현실의 경계 그리고... 뭐였더라. 플레이 직후에는 많이 떠올랐는데, 지금은 많이 까먹었다.
단간론파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플레이한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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