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16. 13:24ㆍ감상/책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 최인호 지음/여백(여백미디어) |
이 소설이 '타인의 방'의 확장판이라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나는 그 소설을 본 적이 없기에 '타인'시리즈 간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읽은 바에 의하면 이 소설은 주인공을 대표로 현대인의 자아 분열을 그리고 있으며, 그 대안으로는 아무것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주인공 'K'는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이전까지 있었던 모든 장소와 사건들, 대인관계에서 '낯섦'을 발견하고 자신이 원래 있어야할 '낯익음'을 찾아 떠돈다. 하지만 K에게 있어 낯익음은 곧 낯설음. 낯설음은 곧 낯익음이다. '낯섦'이 지속되기에 낯이 익고, 결국 '낯섦'은 '낯익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여기서 이 작품의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 '낯섦'과 '낯익음'의 용어 사용 혼동이다. 낯섦과 낯익음이 이음동의어라면 K가 찾는 낯익음은 곧 낯섦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K의 모험은 비정상적인 것이다. K의 여정 속에서 나타난 요소들은 상당히 우연적이며, 과장되어 있다. 가령 K에게 성인방을 소개시켜주기 위해 '을'이 핸드폰을 훔치고, 남녀가 정사를 통한다는 추리는 너무나도 과장되어 있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라, H와의 만남 속에서 나타난 사건, 다른 여고생을 성인방 종업원으로 착각하는 등의 사건은 주인공의 사고는 이미 현실에서 벗어나 있음을 증명한다.
따라서 나는 이 소설의 관전 포인트를 주인공을 믿지 않는 쪽으로 잡았다. 일련의 비논리적이고 환상적인 사건들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였을 경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대낮에 여고생이 세일러문으로 변신하고, K의 아내는 세명의 남자와 한꺼번에 정을 통하고 있으며, 같은 기억, 같은 이름, 같은 사람이 서로 같은 가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즉, 도플갱어, 수 조분의 일의 확률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비판적 시각없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이 소설은 하나의 부조리극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상황이 자신이 인정했던 것처럼 자신의 문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주변인의 태도는 비교적 정상적인 것으로 전환되며, 계속해서 모이는 주변인들의 중복은 K의 정신적 혼란에서 비롯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K가 그토록 대항했던 빅 브라더는 사실 자기 자신인 것이다.
이는 주인공의 사고에서도 보인다. 어느날 로션 브랜드가 달라졌고, 아내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거짓된 곳에 있다고 생각하고 원래 있어야 할 곳을 찾는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흐름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마치 모든 것이 한시로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인공의 실험도 애초에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나
K1과 K2는 같은 인물이다. 누이가, 외모가, 기억이, 행동이 증명한다. 이 둘이 다른 이유는 간단하다. 둘은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K는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어필했다. 3년 전의 300만원, K2가 요구했을리 없는 그 금액은 분명 어떤 'K'가 요구하였다. 이 소설에서 K는 K2와 K1 밖에 없다. 즉, K1은 과거의 자신을 의미한다.
결국 K는 자기 꼬리를 물면서 그토록 언급했던 뫼비우스의 띄를 돌고 있었던 것이다.
-한명, 그 이상의 개인
그렇다면 그가 본 현실은 무엇인가? 출근길에 지나가는 여장의 채취가 남아있는 P교수, 보험설계사이자 대리 운전 기사 '을', 부채를 펼쳐든 아마추어 성악가 월매 등의 인사는 과연 K의 추리대로 빅 브라더를 용케 피한 트루먼 쇼의 증명인가?
그것은 아니다. 지난 3일 동안 만난 이들의 출근길 만남. 인셉션의 한 장면에서 따온 듯한 그것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뜻한다. K가 만난 개개인은 휴일에 있었던 자신만의 또 다른 자아를 벗고 일상에 마주한다. 그러나 K는 일상을 감당하지 못한다. K1이라는, K2라는 가면을 벗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망상에 빠져든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의와 자식, 여고생이 나타나면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오래된 자아를 발견한다. 아주 자그만한 아이를.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이 작품을 해석해보았다. 그러나 의문의 여지는 남아있다. K는 어떻게 자신을 잃게 되었는지, 구원의 여지는 없었는지. 이 두 가지가 없다면, 이 소설은 우리, 즉 사회나 세상의 문제가 아니라 K라는 가상의 일로 국한되버린다. 작가는 K의 불안의 원인을 끝내 밝히지 않았고, 구원 또한 없었다. K는 이유없이 자신을 잃고, 이유없이 자신을 찾는 셈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알파도 오메가도 없이 시작하고 끝난다.
물론 모든 이야기가 사건의 원인을 정확히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인과를 밝히지 않으면, 이야기는 토막이 나고, 주인공의 대표성은 설득력을 잃는다. 이는 이 소설에도 마찬가지다.
또한 주인공의 사고의 흐름이 너무 과장되어 있다. 주인공은 냉철하고 이성적인 성격으로 설정되어 있음에도, 사건을 추리하는데에는 그다지 이성적이지 못하다. 이성을 가장하여 번지르르한 말만 늘어놓을 뿐, 논리도, 검증도, 숙고도 없다. 그저 자기의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싶을대로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잘 쓰여졌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온통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흡입력이 있으며, 자칫하다가는 지루해질 수 있는 주제를 다양한 연출로 살려낸 노련함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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