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12. 12:28ㆍ잡학
최근 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터지면서, 전국민이 좌우와 노소, 지역을 막론하고 분노하고 있다. 11월 12일 오늘,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 행진 시위가 시작될 예정이다.
행정자치부는 이에 대응하여, 11월 1월과 9일에 각 지자체와 국가 기관에게 다음과 같은 공문을 보내 공무원들의 집회 참여를 불허함과 동시에,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무원노조와 전교조가 이달 4일 시국선언에 이어 12일에 민중총궐기 및 공무원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최근 사회적 분위기로 볼 때, 공무원들이 이들 집회에 참여할 경우 공무원 관계 법령에 위반되는 불법행위들에 연루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
행자부에 따르면 12일 집회 참여는 집단행동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공무원들이 집회에 참여하더라도 대통령 퇴진 등 구호를 외치거나 주장할 경우에도 공무원이 가져야 할 정치적 중립을 위배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대체 정치적 중립이라는 것이 뭐길래, 이러는 걸까. 정말 공무원은 어떠한 집회도 참여할 수 없는걸까?
먼저,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한 법조항들이 있다.
1.헌법 제 7조
①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②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2.국가공무원법 제65조 (정치 운동의 금지)
② 공무원은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다음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투표를 하거나 하지 아니하도록 권유 운동을 하는 것
2. 서명 운동을 기도(企圖)ㆍ주재(主宰)하거나 권유하는 것
3. 문서나 도서를 공공시설 등에 게시하거나 게시하게 하는 것
4. 기부금을 모집 또는 모집하게 하거나, 공공자금을 이용 또는 이용하게 하는 것
5. 타인에게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에 가입하게 하거나 가입하지 아니하도록 권유 운동을 하는 것
크게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법조항은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이 있다. 그러나 이 두 법조문에서도 '집회'에 참가하지 못하게 할 근거는 없다. 헌법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을 법률이 정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국가공무원법에서는 '투표의 참여와 불참 권유', '서명운동 권유', '홍보물 게시', '자금 운용', '정당 및 단체 가입 혹은 비가입 권유' 등 전체적으로 특정 정치 단체나 선거, 서명 등 참여/불참여를 권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공직자의 신분을 이용하여 어떠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이에 예외라고 할 수 있는 공무원은 크게 네 부류밖에 없다.
1.최상위 공직자(정무직):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국회위원
2.지방자치 의원 및 단체장
3.국회소속 비서관 및 보조요원
4.국공립대학 총장, 학장, 교수, 부교수, 전임 강사 등
그렇다면, 이 법조문들이 이번 집회의 참여를 막을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부족하다.
이에 행자부는 집단행동금지의 원칙을 내세운다.
대한민국 국민은 노동 3권, 즉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모두 가지지만 공무원과 경찰, 군인 등은 업무 특성상 일부 제한받고 있다.
특히 공무원들은 단체행동권을 제한받고 있는데, 그 근거는 국가공무원법에 있다.
3.국가공무원법 제66조(집단행위의 금지)
① 공무원은 노동운동이나 그 밖에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은 예외로 한다.
② 제1항 단서의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범위는 국회규칙, 대법원규칙, 헌법재판소규칙, 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③ 제1항 단서에 규정된 공무원으로서 노동조합에 가입된 자가 조합 업무에 전임하려면 소속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④ 제3항에 따른 허가에는 필요한 조건을 붙일 수 있다.
즉, 공무원들은 국가공무원법 제66조 1항에 근거하여, 공무와 근무조건 외의 사항을 위한 집단 행위를 하여서는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판례가 있다.
국가공무원법 위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전교조 시국선언 사건)이다. 링크
당시 교원들은 시국선언하면서, 집단행동금지의 원칙을 어겼으며, 정치 단체와 연계하여 정치적 중립성을 해하였고, 교원이 가지는 업무의 특성상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이 상고 각하의 이유 중 하나이다.
이에 반대 의견에서는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한 행위’가 아니고 ‘직무전념의무를 해태하는 등의 영향을 가져오는 집단적 행위’도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집회에 대한 공고에 대하여 이재정 의원은 "향후 징계행위를 예정하고 있다는 방식의 공문은 계도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중립성을 오도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 밝혔고
이에 행자부 차관은 "공무원 또한 개인의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은 헌법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집회에도 참여할 수 있다고 본다"며 "합법적 집회와 관련한 부분을 금지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일반 국민과 달리 공무원은 여전히 국가공무원법에 의한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고, 헌법에서도 공무원의 집단행동은 금지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공무원이 집회에 참여할 경우 관계 법령에 위반되는 불법행위에 연루될 가능성이 있음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말하는 불법행위란 정당 가입 혹은 서명, 투표 등에 대한 참여독려/불참독려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공문을 보내, 집회 불참을 독려했던 행자부 측에서는 크게 후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의 범위가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해외는 어떨까? 다른 나라들도 공무원들은 집회에 참여할 수 없고, 정치적 중립을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
우선 미국이다.
미국은 해치Hatch법을 1939년, 40년 두 차례에 걸쳐 입법하였다.
그 내용은
①입후보 또는 특정 후보를 위한 선거운동
② 정치헌금이나 정치자금모금
③ 특정인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한 찬양·비방·뇌물수수행위
④ 선거일에 타인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행위
⑤ 정치적 조직의 간부로 활약하는 행위
⑥ 특정 개인·정당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행위
를 금지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 대통령과 부통령은 제외되어 있다.
이것만 보면 한국의 국가공무원법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연방선거운동법 1971(Federal Election Campaign Act of 1971, FECA)이 1974년에 개정되면서, 공무원 개개인에 대한 정치활동의 제한이 상당히 완화되었다.
1.교원 등 공무원의 정치활동
2.정치문제 및 입후보자에 대한 견해 표시
3.특정 정당 자금의 유인 및 공여
4.정당활동 참여, 특정 정당 후보에 대한 선거 운동
을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시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같은 정당의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선거 지원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있다. 그는 선거 유세 중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았다. 한국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원 발언이 정치적 중립을 저해한다고 탄핵 소추의 근간이 된 바가 있었던 것과는 대조된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해치법의 예외 규정도 있지만,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 문화의 풍토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 오바마가 아닌, 개인 오바마에게 정치적 발언의 자유를 허용하였고, 유권자들이 그것을 감안하여 받아들일 것이라는 사회적 신뢰가 뒷받침되어 있는 것이다.
연방선거운동법 개정이 모든 정치활동을 허가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에 공권력이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막는 해치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단지, 개인차원에서의 정치활동을 허락하는 것이다. 개인을 믿지 못하고, 생활의 모든 면을 일일이 간섭하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프랑스는 1946년, '일반공무원법'을 제정하여,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거의 제한하지 않고 있다.
공무원도 일반 노동자와 같이 단결권과 파업권을 보장하여, 사기업 노동자처럼 일반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고, 노동조합 조직형태에 제약이 없다. 심지어 경찰, 법관, 소방관, 교도관 등에게도 단결권이 있다. 군인은 단결권이 부인되지만, 일반 결사체는 구성이 가능하다.
단체행동권은 원칙적으로 허용되나 파업예고제를 도입하고 있다. 경찰관과 교도관 등 특정 공무원에 대해서는 파업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으며, 공공질서를 중대하게 침해할 경우 파업규제권을 가진다.
뉴스에서 흔히 보이는 프랑스 공무원들의 시위는 이 법안을 기반으로 표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도 역시 한국보다 자유로운 편이다.
업무 중 정치활동은 제한하지만, 근무 시간외의 활동은 보장하고 있다. 또한 공무원은 자신의 신분을 그대로 가지고 하원의원에 출마할 수 있으며, 낙선된 경우는 공무원 신분을 그대로 보유할 수 있다. 당선된 경우에는 공무원을 사직하나 공무원 연금의 혜택을 받고, 하원의원을 그만두었을 경우에는 공무원으로 복직할 수 있다.
교원의 정치적 활동 또한 자유민주주의적 질서 범위 내에서 폭넓게 허용되고 있다. 수업 중에 지식 전달의 목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할 수 있으며, 정당에 가입할 수 있다. 또한 근로관계에 따라 교원노동조합 및 단체를 결성할 단결권을 가지고 있다.
영국도 공무원의 정당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영국은 클래스에 따라 정치 활동의 자유가 나뉘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하급직(보조 서기)는 정치 활동이 자유로우나, 중간직(서기)는 정치 지위의 입후보만 금지되어 있고, 상위직(행정, 집행)은 모든 정치적 활동이 금지되어 있다. 단체행동권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만, 필수 공익사업의 파업은 제한된다.
한국과 가장 비슷하게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는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의 '국가공원법'은 특정정당의 가입과 탈퇴를 위한 조직적 운동, 정치적 목적을 위한 금품수령 등 직무와 관련한 다양한 정치행위를 금하고 있지만, 정당가입 자체는 허용하고 있다.
과거, 공무원에게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던 것은 세간의 인식처럼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정치적 세력의 외압으로부터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김영란법의 최초 취지를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현재 정치적 중립의 강조가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통제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미 선진국들은 개인으로서의 정치활동은 허락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가다듬고 있다.
시민사회와 공직사회가 과거 엽관주의 시절처럼 정치적 판도에 일희일비하면서 부화뇌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보다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 개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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