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24. 00:25ㆍ여행/일본
나가사키 역. 나가사키 여행의 시작과 끝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최근 에어서울 등 국내 항공사들이 나가사키와 오이타 등 비교적 잘 알려져있지 않은 항로를 취항하고 있다. 도쿄와 오사카는 너무 유명한 탓일까. 그래서 나도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나가사키에 방문해보았다.
사실 나가사키는 꽤 많이 들어본 곳이었다. 대항해시대 시리즈를 비롯한 역사 관련 게임을 해서도 그렇지만, 서양과의 접촉으로 일본 역사를 바꾼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도시가 작기 때문에 동선을 잘 짜놓는다면, 주요 관광지는 금방 돌아다닐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을 여행할 때에는 '무언가를 구경해야 한다'고 쫓기는 듯이 다니기보다는 여유롭게 휴식하면서 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관광지들이 규모가 비교적 작은 곳들이 많기 때문에 엄청나게 대단한 무언가를 기대하면 난감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소한 것들이 모여 잔잔한 인상을 주는 것이 많기 때문에, 뭔가 거창한 것을 좋아한다면 다른 곳을 추천한다.
나가사키 역 안에 있는 매장에서 먹은 오야코동과 우동.
나가사키에서 무언가 특별한 먹을 거리가 있냐하면, 사실 그런 것은 없다. 나가사키 짬뽕과 쟁반 우동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도쿄의 나리타 공항에서도 먹었던 적이 있는지라 굳이 먹지는 않았다. 굳이 특별한 먹을 거리라면 '카스테라'와 토루코 라이스가 있다. 카스테라는 어느 관광 가이드북에서도 나오듯, 분메이도文明堂의 카스테라가 유명하다. 나가사키 역 앞에 분점이 있고,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오하토에 총본점이 있다.
나가사키에서 뭔가를 많이 먹고 싶다면, 공항 중앙 로비에 구르메 책자가 있다. 일종의 맛집 책자인데, 책자 뒷부분에 음료 추가 무료나 할인 등 다양한 쿠폰이 있으니, 주문할 때 제시하면 좋다.
노면전차가 살아있는 풍경은 꽤나 인상적이다.
나는 나가사키를 돌아다닐 때, 로프웨이를 갈 때 빼고는 노면전차를 이용했다. 어차피 중요 관광지들은 노면전차 정류장에서 많이 벗어나있지 않다. 설령 벗어나 있다하더라도 충분히 걸어갈 수 있기 때문에 나가사키 역사 안의 안내소에서 500엔짜리 1일 패스를 구입해서 많이 써먹었다. 어차피 1회 승차 비용이 120엔이기에 패스가 더 싸게 먹혔다.
노면 전차 정류장에 붙어있는 전차 노선도.
나가사키의 관광지는 크게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진다. 어느 쪽에서 시작하던지, 차례대로 지나가는 편이 동선확보에 수월하다.
나는 먼저 북쪽의 평화공원부터 방문하였다. 나가사키는 세계사에서도 익히 기록되었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 중 히로시마와 함께 원자폭탄 투하를 맞은 도시이다. 이 참화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가사키에서는 평화 공원을 비롯하여 다양한 시설들을 건축하였다.
평화 공원은 중앙의 '평화의 상'으로 가는 길에 각 국가들의 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핵무기로 인한 피해를 막고, 평화를 기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데탕트를 맞아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이 조형물들을 많이 보내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어린 아이들이 동상 앞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일본의 교육 현장의 한 면을 목격한 기분이 들었다.
안내 표지판에 따르면 원폭에 휘말려 피해를 입은 중국인과 조선인 위령비가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중국인 위령비는 쉽게 찾을 수 있었으나, 조선인 위령비는 어디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인터넷 상으로 뒤져봐도 있는 것이 확실한데, 결국 못 찾았다. 조선인 위령비를 방문하고 싶다면, 미리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위치를 알아 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라카미 천주당. 나가사키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가톨릭 관광지가 대단히 많다. 실제로 나가사키는 일본의 다른 현보다 기독교 신자 비율이 많은 편이다.
다음은 원폭 박물관과 우라카미 천주당에 방문하였다. 원폭 박물관은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었다. 원폭 투하 당시의 폐허 모습을 재현하기도 하고, 각종 유물이나 증언, 더 나아가 다른 원폭 실험지에서의 피해를 기록하여 핵무기 반대를 주장하고 있었다. 원폭 투하 당시 조선인들의 피해도 상당했다. 의친왕 의 차남, 이우도 히로시마 원폭으로 사망하였다. 원자 폭탄의 내부마저 재현할 정도로 세심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전쟁 중 일본의 행보에 대해서는 세계사 교과서 맨 마지막 페이지에 나올 법한 연대표 식 서술밖에 없었다. 원폭으로 인한 조선인과 중국인 등의 피해 규모와 한일 합병, 만주 사변, 중일 전쟁 등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우라카미 천주당은 1877년에 지어진 성당으로 원폭 투하로 파괴된 적이 있는데, 복원된 지금도 파괴된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성당 안에는 약간 훼손된 성모 마리아 상이 있으며, 일본 최대의 성당이다.
그러나 사실 역사적 가치로는 우라카미 천주당보다는 오우라 천주당이 더 크다. 오우라 천주당은 1865년,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신자 발견'의 장소이다.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금교령 이후 일본의 기리스탄(크리스천)은 약 250여년 간 암흑 속에서 신앙 생활을 해야 했다. 시마바라에서 난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결국 진압되었고, 일본 정부의 기독교 억압 정책은 메이지 정부 초기까지도 이어졌을 정도로 가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신부가 포교를 위해 오우라에 성당을 세웠을 때, 많은 신자들이 찾아가 신앙을 고백했다. 어둠 속에서의 믿음이 250년 만에 빛으로 나온 것이다.
네덜란드 상인들의 저택 안을 재현해 놓은 모습.
그 후에는 데지마로 향했다. 나는 사실 나가사키를 가면 꼭 데지마에 가보고 싶었다. 역사적으로 워낙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데지마는 일종의 인공섬으로 네덜란드 상인들이 본토로 들어오는 대신 이 섬을 통해서 거주하고, 통상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조차지였다. 그러나 개국하면서, 점차 데지마는 그 기능을 상실하였고 주변도 매립되어 섬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그 후 방치되었다가 1951년부터 데지마 복원 계획이 시작되었는데, 아직까지도 진행중이다. 문화재 복원은 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데지마의 규모 자체는 협소한 편이다. 역시 느긋하게 관람하는 편이 좋다. 곳곳에 스탬프가 있었는데, 종이 한 장을 받아 스탬프 모으는 재미로 다니기도 했다. 데지마와 세계의 관계를 설명하는 곳도 있었는데 꽤 인상적이었다. 보통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인천의 개항 박물관에는 한국 최초로 들어온 서양 문물과 경인 철도 등 다양한 것들이 전시되어 있지만, 인천이 다른 국가들과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다. 오로지 한국의 이야기만 한다. 뭐, 그것이 당연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관점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한 수 배운 느낌이 들었다.
다음은 메가네바시와 신치 차이나타운에 방문하였다. 메가네바시는 무언가를 보러가기 보다는, 산책이나 먹거리를 위해 방문하는 것이 좋다. 바로 위 사진이 메가네바시인데, 동아시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아치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물 속에 비치면 안경 모양이 된다는데, 잘 안 비친다. 메가네바시는 인근 지역에 있는 여러 다리 중 하나에 불과하다. 때문에 산책하다보면 비슷한 다리가 하나 보이면, 또 하나 보여 꽤나 재밌다.
메가네바시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간코도리観光通り라 하여, 상점이 밀집해있는 지역이 있다. 이곳에 돈키호테 나가사키 점이 있으니 참고할 것. 그 밖에도 여러 음식점들이 있어 차이나타운과 더불어 뭔가 먹기에 적합한 곳이다.
마지막은 나가시키의 명물, 로프웨이로 장식했다. 가이드북을 보면서, 과연 볼 만한 가치가 있을까하고 생각했던 나였다. 하지만 일부러 와서라도 확실히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도쿄의 도쿄타워나 신주쿠 도청의 야경과는 다른 멋이 있었다. 높은 건물이 시야를 방해하지 않고, 도시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는 느낌이 좋았다.
로프웨이는 전차보다 버스를 타는 게 좋은데, 나가사키역 근처에 로프웨이로 가는 버스 번호가 붙여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당 버스에 타고 종점까지 가면 도착한다.
나가사키 여행에 필요한 팁은 다른 글(링크)에 수록하였다. 참고하면 보다 편리하게 관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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