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22. 23:20ㆍ감상/책
완득이 - 김려령 지음/창비 |
완득이. 완득이. 이름 촌스러운 완득이. 싸움 잘하는 완득이. 똥주 만난 완득이. 양아치를 팬 완득이. 엄마 찾은 완득이. 킥복싱 배운 완득이. 여자 친구 사귄 완득이. TKO 당한 완득이. 완득이. 완득이.
이 소설은 앞에서 말한 줄거리 그 자체다. 어떠한 특정 주제를 놓지 않고, 그냥 완득이라는 주인공의 신변잡기를 기술하였다. 뭐 나중에 세상으로 나가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그에 대한 복선도 없고(완득이 어머니와 아버지 간의 대화에 한번 등장하긴 하지만, 너무 짧아 사실상 복선이라고 볼 수는 없다) 너무 뜬금 없어서 별로 감흥도 없다.
따라서 이 소설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주제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 중간에 완득이 아버지와 삼촌(은 아니지만)이 겪는 차별과 고통은 어디까지나 주인공의 내면에 양념을 쳐주는 상황일 뿐, 주제는 아니다. 굳이 이 작품의 주제를 들자고 하면 주인공의 '성장'에 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애초에 이 작품이 성장 소설이니 당연한거고.
그렇다면 이 소설의 의의는 무엇일까. 우선, 이 작품은 생각해 볼만한 주제도 없고, 내용이 특출나게 참신하지도 않다.
사실 이 문제들은 작가가 이 작품을 쓸 때, 각 파트에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 최소한의 분량만 줬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파트에 분량이 없으니 어떠한 주제를 놓고 담론을 쌓기 어렵고, 내용을 좀 더 풍부하게 구성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단점들은 보통 소설의 질을 갉아먹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니다. 작가는 그 단점들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이걸 노리고 썼는지, 쓰는 과정에서 이렇게 되었는 지는 당사자가 아니라서 모르겠다. 어쨌든 이 작품은 앞서 말한 두 가지 특징과 두 가지 단점을, 뭐랄까. 엄청나게 무진장 잘 섞어놔서 장점으로 만들어 버렸다. 읽으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작가는 소설을 대표하는 주제, 즉 거대 담론을 포기한 대신 완득이의 일상이라는 거소 담론을 잡음으로서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게 하였다. 물론 쉽게 이해되고 접한다고 해서 다 좋은 소설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시중에 떠도는 3류 상업 문학들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3류 상업 문학과는 달리 '공감'을 끌어내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
알다시피 이 작품의 내용은 당장 신문 몇 페이지만 읽어도 다 알수 있는 평이한 설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것을 나열하는 것과 공감시키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안다고 해서 다 공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그게 되면 누구나 다 글쓰지. 그러나 작가는 그것을 해냈다. 집안이 불행한 고등학생이 이리저리 방황하다 드디어 자기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는 그 이야기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썼다. 그것은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독자들은 각각 집안 내력이나, 학력, 재력 등 각각 자신만의 고유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어떠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공감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사람들 대부분이 경험한 보편 타당한 것을 설득력 있게, 흥미 있게(가장 중요하다. 이미 경험한 것을 두 번 들으면 재미있을까?) 이야기에 포함시켜야만이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상당히 연구할 것이 많은 작품이다. 분량 조절, 시점의 특징을 최대한으로 살린 것, 인물의 특징, 문체, 플롯 구성 등.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 볼만한 작품이다. 다만, 역시 주제가 거의 전무하다는 없다는 점은 '이야기'로서 치명적인 단점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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