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가 된 미국 - Call or die

2016. 12. 13. 00:00감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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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가 된 미국 - 6점
도널드 트럼프 지음, 김태훈 옮김/이레미디어

 

 도널드 트럼프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어, 미합중국의 제45대 대통령이 될 인물이다. 극단적인 발언과 정책으로 논란이 되었는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힐러리 클린턴에게 승리하였다.

 

 대체 왜 그가 승리했는가? 국내의 소위 '깨어 있는' 사람들은 포퓰리즘과 극단적 파시즘 사상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의 성차별적 발언과 인종차별적 발언이 그의 극우적 시각을 잘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트럼프 치하의 미국은 여성에 대한 성상품화적 시각과 소수 인종에 대한 편견, 그리고 세상에 '굳게 닫힌' 폐쇄주의로 후퇴할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솔직히 나도 한때, 그들의 대열에 참가했었던 적이 있다. 트럼프가 제2의 히틀러는 아니더라도,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우 열풍과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큰 착각이었다.

 

 왜 나는 그 착각을 했던 것일까? 아니, 왜 우리는 그런 착각을 했던 것일까? 우리는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간에 대해 너무나도 모르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연구하지 않았다. 그저 미국 언론이 떠드는 대로 앵무새처럼 받아들였을 뿐이다.

 

 트럼프는 언론의 적이었다. 그는 백만장자였지만, 우호적인 언론사는 단 한 개도 가지지 않았다. 돈으로 언론계를 장악한 루퍼트 머독과는 정반대의 행보라 할 수 있다. 그는 언론을 철저하게 무시하였다. 오직 대중 집회와 토론만이 그의 소통구였다.

 

 정치계에서 언론을 적으로 돌리면 어떻게 되는지는 멀리 가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선례가 있지 않았던가. 언론을 적으로 돌리면, 모든 행동과 말이 하나 하나 프로불편러들의 검수를 받게 된다. 의도가 완전히 왜곡되고, 자그만한 부분이 커다랗게 부풀려진다. 나중에 가서는 급기야 없는 말까지 지어내는 것이 언론이다.

 나는 그의 사상에 동의하지는 않지만(사실 그의 공약 8할 이상을 반대한다), 이 발언은 사상과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누구나 가슴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도 결국 기업이다. 언론이 공정한 보도와 이익이 나란히 놓였을 때,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주요 언론들에 의해서 트럼프는 성차별주의자, 파시스트, 외국인혐오자, 미치광이, 포퓰리스트, 금수저 등으로 불렸다. 개인적으로 뒤의 세 수식어는 맞는 것 같지만. 앞의 세 수식어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첫째, 도널드 트럼프가 성차별주의자인가하는 문제는 섣불리 결정해서는 안된다. 일부 국내의 여성계는 그의 성추행 발언을 문제삼는다. 맞는 말이다. 그는 경솔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과연 그가 제도적으로 여성을 차별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가 이미 발언했다시피, 그는 1980년대에 최초로 건설업계에서 여성에게 중역을 맡긴 사람이었다. 건설업계 자체가 마초적인 성향이 있다는 점을 착안하면, 파격적인 행보였다. 뿐만 아니라, 2016년, 그는 교육부, 교통부, 내무부 장관직과 유엔 대사직을 여성에게 분배하였다. 그가 정말로 여성혐오자였다면, 결코 하지 않을 행동이다.

 

 그가 그동안 보였던 언행들은 일련의 정형화된 어떤 사고체계를 가진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성이 그런 것 혹은 사안에 따라서는 악의적인 방해(성추문 집단고소 사건)에 의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말하자면, 트럼프는 그렇게 대단한 도덕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싸이코패스나 극도의 위험분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성격이 나쁜 사람일 뿐이다.

 

 이 사실을 간과하지 못한 사람들은 트럼프를 여성의 적으로 몰았다. 그러면서 페미니즘의 힐러리를 추겨세웠지만, 트럼프의 여성 득표율은 42%로, 존 매케인이나 밋 롬니와 별반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그는 저서에서 성차별없이 단순히 일 잘하는 사람이 좋다고 강조한다. 전형적인 사업가 마인드다.

 

 

 둘째, 도널드는 파시스트인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다. 파시즘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사용하는 발언이다. 파시스트는 공동체 및 국가 혹은 민족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강조함과 동시에 개인주의와 민주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다원주의를 부정하는 정치적 사상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표어와 더불어 내셔널리즘적인 발언을 많이 해왔다. 하지만 그는 결코, 국가주의적인 사람이 될래야 될 수가 없는 인물이다. 그는 사업가다. 그것도 국가의 특례에 빌붙어서 먹고 사는 자가 아니라, 자유경쟁을 신봉하는 글자 그대로 미국적인 사업가다. 그의 사업가적 기질은 이 책에도 고스란히 나와 있다.

 그는 자유 경쟁을 진심으로 선호하며, 국방과 인프라 구축을 제외하고는 연방 정부의 손을 가급적이면 줄이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파시스트라고?

 물론 경제 체제만으로 파시즘-비파시즘을 단언할 수는 없다. 파시즘은 체제보다는 생각의 원리에 근거하니까. 하지만 이렇게 받아들여도, 그가 파시스트일 확률은 지극히 낮다고 할 수 있다.

 

 선거 도중 그의 발언이 인종차별적이라는 주장이 한때 돌고는 했다. 이에 따라 미국 사회도 백인 우월주의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돌고 있다. 확실히 트럼프는 백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사회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애초에 사업할 때, 유색인종들을 잘만 고용하던 그였다. 후보였을 때는 발언에 아무런 책임이 없었지만, 공식적인 직함을 가지면 행동에 제한이 걸린다. 개인적으로 그가 인종차별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런 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되지도 않는다.

 다만 그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여기는 멍청한 인종주의자들이 잠시나마 활동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반향을 못 일으킨 채 사그라들 것이다.

 

 셋째, 외국인혐오자인가?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불법 이민자는 내쫓고, 지식인 및 기술자들의 합법 이민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파들이 말하는 지극히 당연한 레퍼토리다. 그의 대표적인 공약인 '멕시코 장벽'은 얼핏보면 폐쇄주의적인 것 같지만, 주변 국가들이 불법 이민을 종용하는 미국의 특성상 전혀 이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법 이민에 관대하게 대하는 기존의 정책이 이상해보일 지경이다.

 

 그는 사업가답게, 대외 정책도 Give & Take로 구상한다. 미국에게 도움이 되는 국가들에게 혜택을 주고, 피해를 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역시 말만 들으면 지극히 당연하다. 그의 이러한 명확성이 대중의 호감을 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기에, 그의 대외 정책은 너무나도 허점이 많다.

 

 그가 특별히 외국인을 혐오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소위 망언을 한 적은 많다. 하지만 그것이 정책으로 이어지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미국은 이미 다인종국가가 되었다. 특정 인종을 혐오하는 행위가 불가능해졌다. 다만, ISIS를 구실로 테러와 관련하여 보안 정책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에 따라 아랍계에 대한 어떤 검사나 조사가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없어질 지도 모른다.

 

 

 -그의 행보에 대하여

 트럼프는 럭비공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를 보수냐 진보냐로 단언해서 정의할 수 없다. 그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멕시코에 대해서 강경발언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성추문이 드러났지만, 자신의 딸 이방카를 최측근으로 내세워 항상 대동하고 다니며, 여러 관직을 여성에게 배분한다. 또한 낙태 찬성론자였다가, 선거 도중 반대론자로 바뀌었고, 지금은 찬성론자로 또 바뀌었다. 언제든지 자신의 사상이 바뀌는 사람이다.

 

 선거 내내 월 스트리트를 공격하였지만, 정작 중요 장관직을 갑부들에게 내주었다. 또한 오바마케어를 완전 폐지하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한 선거 때와는 달리, 일정부분만 축소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저서에서도 적었다시피, 자신의 전략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리더라면 예측이 불가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그는 지금 일련의 불확실한 행보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의 정책을 예측할 때에는 사소한 부분보다는 전체적인 틀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는 어찌되었든 '작지만 큰 정부'라는 매우 이율배반적인 국정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과정 속에서 미국이 정말 위대해질지, 아니면 고꾸라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 한가지, 확실한 점은 트럼프는 세계의 정세를 완전히 뒤집어놓았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일변도로 진행되던 국제 정계의 메인스트림은 다소 역풍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도 현명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에 대한 개인적 평가

 개인적으로 나는 트럼프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포퓰리스트다. 인기를 위해서는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장기적인 비전이 없다. 오직 현재의 이해타산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독특한 해결책이 필요한 법이다. 대공황기의 루즈벨트가 그러했고, 전후 영국의 클레멘트 내각이 그러했다. 트럼프가 그자들과 비견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모순되면서도 일관적이다. 즉, 일관적으로 모순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시대의 흐름을 뒤바꾸었다.

 

 FTA와 TPP 등으로 대변되던 자유무역에서 벗어나 각국은 자국내의 양극화를 해결하는 데에 총력을 다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퇴보인지, 진보인지는 내가 감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장미빛 미래가 아니라 잿빛 현실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당선은 그 변화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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