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아버지-단절과 소통의 기로에서

2016. 11. 10. 22:13감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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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8점
김정현 지음/황금물고기

 

 

 90년대는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겪은 해였다. 군사 독재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국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민주주의 정권을 세웠고, 경제 성장 또한 오일 쇼크를 이겨내면서 순조로워 보였다. 미-소 간의 내전 갈등은 사라지는 듯 보였고, 누구나 노력만 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찾아온 외환 위기는 그 동안의 진취적 분위기를 완전히 무너뜨렸고, 거의 망국의 직전까지 가 소위 '좋았던 시절'과 단절시켰다.

 

 이런 이중적인 90년대는 '단절'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세, 정치, 전통, 문화, 경제 등 기준에 유지되어 왔던 생활 요소들이 급격히 변화하여 시대에서 시대로 넘어가면서 단절이 생긴 것이다. 그렇기에 90년대 중후반 베스트셀러였던 이 소설은 '단절'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싶다.

 이 소설의 내용은 단순하다. 암에 걸린 '아버지'가 자신의 병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살다가 끝내 가족에게 들키고, 그들과 화해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세가지의 단절을 경험한다. 하나는 생과의 단절로 말 그대로 죽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가족과의 단절로 아마 이것이 이 소설의 주요 플롯이지 않을까 싶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작중 내내 고독에 시달린다. 죽을 병에 걸렸음에도 가족에게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끝내 그 고독을 이기지 못한 주인공은 일탈하게 되고, 이로 인해 가족들은 냉소하여 또 다른 고독에 시달린다. 이 과정 속에서 주인공과 가족은 각각 자신만의 입장만을 고수한 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엇나가기만 한다. 따라서 주인공과 가족은 단절될 수 밖에 없었고,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 단절을 회복할 수 있었다.

 

 세 번째 단절은 세대 간의 단절로서 작중 주인공이 아들 방에서 철지난 옛 음악을 듣는 것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 단절과 더불어 이 단절은 시간이 지나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으로, 작중 내에서도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두 번째 단절 뿐이었고, 이는 현실에서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사람인 이상 언젠가는 죽고, 세대가 거듭될 수록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소설에서 두 번째 단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문화 개방으로 개인주의 문화가 들어와 발달하였지만, 정작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이해'의 문화는 정체되어 있다. 타인에 대한 이해가 없는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 특유의 취중진담 문화에서 보이듯 경청 대신 주장을, 논리 대신 자존심을 앞세우는 것이 아직도 남아있지 않은가 싶다.

 사회든 가족이든 개인이든 이해가 없으면 단절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나 '남'은 그렇다치더라도 사람의 마지막 연緣인 가족과 단절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작중에서도 그렇듯이 서로의 진심어린 소통 밖에 없다. 너도 나도 소통을 강조하는 이 시대가 과연 '단절'을 넘어 진정한 '소통'의 시대가 될 수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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