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30. 03:00ㆍ감상/게임
거꾸로 매단 성조기. 자신들을 버린 국가에 대한 반기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제3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스펙 옵스: 더 라인은 게임 역사상에서 가장 특이한 게임 중 하나일 것이다. 게임을 플레이 하지 말 것을 종용하기 때문이다. 게임은 스토리의 인물뿐만 아니라 그것을 조종하는 플레이어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다. 그러고나서 게임은 직간접적으로 왜 '계속 했냐'고 묻는다.
주인공 마틴 대위가 이끄는 델타포스 대원들은 거대한 모래 폭풍으로 외부와 단절된 두바이에 파견된 33연대를 구조하는 임무를 맡는다. 모래 폭풍을 뚫고 두바이에 진입한 일행들은 도시 전역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일들에 분노한다. 자신들이 구조해야 할 33연대는 두바이 시민들을 총으로 위협하며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CIA가 두바이 시민들을 선동하여, 자신들에게 대적시킨다고 분노하였다. 그리고 델타포스 일행들을 그들과 한패가 아니냐며 선제 공격한다. 결국 33연대를 제압하기로 결정한 주인공 일행은 그들과 대적하면서 두바이를 '해방'시키려 한다. 그러나 전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무언가가 '이상'해진다. 주인공 일행은 33연대와 싸우면서, 점차 선을 넘게 된다.
그들의 진영에 잠입하여 민간인들을 구하기 위해 백린탄을 사용하는데, 문제는 그들이 민간인들을 억압하려했던 것이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 격리했다는 것이다. 또한 백린탄은 민간인 구역에도 발사되어 결과적으로 주인공 일행이 사람들을 학살하게 된 것이다.
그 후 PTSD에 걸린 마틴은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사건과 지형지물, 인물들은 모두 마틴의 왜곡이 투영되며, 이는 결국 결말에 진실이 터지면서 플레이어와 주인공의 멘탈을 부수게 된다.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따라, 일행의 심리 상태도 점차 변화하게 된다.
이 게임의 특징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플레이어에게 '죄책감'을 준다는 것에 있다. 스토리 진행상 플레이어는 민간인을 '학살'할 수밖에 없다. 거부한다는 선택지자체가 없다. 이렇게 선형적인 구성을 한 게임은 스토리를 진행하는 플레이어에게 계속해서 죄책감을 부추긴다. 플레이어와 주인공이 학살한 33연대는 사실 완전히 좋은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혼란 속의 두바이를 외부의 지원이 올 때까지 지키려고 했던 책임감이 투철한 군인이었다. 또한 주인공 일행이 벌인 테러는 비교적 질서가 유지되고 있던, 두바이를 완전히 몰락시켰다.
라디오 DJ의 방송이나, 게임 도중의 문구,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주인공-플레이어를 비난한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아니, 너희가 이렇게 시켰잖아!
이런 심리적 과정이 이 게임이 말하고 싶은 주제이다. 시킨다고 하냐? 실제로 많은 범죄자들은 자신들의 범행을 '윗선'의 지시와 명령 때문이라고 합리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스가 없으면, 다른 핑계를 댄다. 범죄자들의 수만큼 다양한 범행 이유가 있다.
자신이 저지른 범행에 대한 반성과 직시를 거부하는 범죄자들의 본성, 그리고 누구나 그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인간의 나약함을 이 게임은 설득력있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플레이어에게 주체성을 요구하고 있다. 플레이어는 게임 진행 중에서 범죄자처럼 변명한다. 그냥 게임이다, 이건 제작사 잘못 아닌가? 사실 방법은 있다. 그냥 게임을 끄면 되는 것이다. 스탠리 패러블과 더불어 플레이어의 선택을 요구하는 면이 여기서 드러난다.
스펙 옵스: 더 라인은 게임성보다는 스토리와 구성이 던져주는 메시지가 더 가치가 크다. 솔직히 게임성은 평범한 FPS에 지나지 않는다. 동료 두 명은 전투에 별로 쓸모가 있지 않다. 다만, 적들의 AI가 제법 잘 만들어졌다는 점이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한번쯤 해 볼 만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할 거리도 많을 뿐더러, 게임이 더 이상 '재미'의 대상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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