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11. 23:43ㆍ감상/영화
감독: 멜 깁슨
장르: 스릴러/드라마
아포칼립토는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들에게 멸망하기 직전, 마야 문명의 인신 공양 의식으로부터 도망가는 '표범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화전과 무분별한 옥수수 농사로 이미 사냥감과 지력을 잃어버린 마야 제국은 이미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어떻게 해결할지를 모르는 가뭄과 기근을 이겨내기 위해 종교적 신앙에 기대기 시작했고, 이는 주변 부족들의 주민들을 노예화하거나 인신 공양하는 강경책으로 이어졌다.
주인공 표범발은 오랜 위기 끝에 완전히 이성을 잃은 마야 제국의 전사들의 습격을 받아 다른 주민들처럼 죽을 뻔하지만 결국 탈출에 성공한다.
이 영화의 추격씬은 정말 끝내줬다. 추격씬은 감정이입이 생명이다.
관객과 주인공이 서로 동일시되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감정과 위기에 공감되어야 빛을 발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전근대문명 특유(는 아니고 사실 근대 문명의 잔인함과는 별개의)의 잔인함을 고증하여, 극에 몰입감을 불어넣었다.
보다보면 저절로 입이 벌어질 지경. 그만큼 완성도가 높은 영화다.
사실 이 영화는 초반부의 내레이션과 끝의 콩키스타도르 상륙 때문에 백인우월주의니 어쩌니하는 비판을 받은 바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정작 영화를 보면서, 콩키스타도르를 정당화한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다.
마야 제국은 스스로 재앙을 초래하였고, 결국 망했다. 망할만 해서 망했다.
옆동네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킬 때, 코르테스와 어깨를 나란히 한 중남미 원주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상기해보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콩키스타도르의 정복이 정당했냐라는 낡은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이유가 없다.
정복이 잔인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고, 마야를 비롯한 고대 문명이 망할만 해서 망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상륙한 콩키스타도르에게 걸어가는 마야 전사와는 달리, '숲'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표범발의 대사는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주변 주민들 심장 뽑아내는 중남미 제국, 각종 신문물로 무장하여 새 땅을 정복하러 온 이방인.
어느 쪽도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한 구원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포칼립토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단어를 스페인인들의 상륙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주인공이 정한 제3의 선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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